최근 대한 불교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재정을 공개했다. 그리고 얼마 동안 누리집(홈페이지)에 지속 공개한다고 한다. 그 동안 몇 군데 사찰이 개별적으로 재정을 공개했지만, 이번에는 종단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종단 직영 주요 사찰의 재정을 공개하는 것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조계종은 앞으로 예결산액이 연 30억 원 이상 사찰 43곳의 재정을 오는 15일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할 방침이다.
이번 재정 공개는 '사찰재정 투명화' 결정에 따른 조치다. 종교단체뿐만 아니라 기관의 재정을 공개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하고 투명화하며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는 대한민국 공군에서 군종목사로서 신부님, 스님과 더불어 장병들 신앙전력화, 인성교육,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향상을 위해 함께 동역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타 종교를 모르는 필자는 ‘군’이라고 하는 거대한 조직사회 속에 26년간 사역하면서 타종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군인교회(Military Chapel)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아침 8시에 통합 군종실로 출근하면 신부님과 스님, 그리고 3종교 군종 병들과 함께 군종회의로 하루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함께 활동한 ‘군종스님’들과 ‘군종 신부님’들의 끊임없는 변화와 갱신,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고민하며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칼 맑스(Karl Marx)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종교는 민중의 아편’(Die Religion ist das Opium desVolkes) 이라고 말했다. 부패한 종교, 타락한 종교, 윤리와 도덕을 상실한 종교, 진실 된 성찰 없이 신앙의 이름으로 자기변증에만 힘쓰는 종교는 상처와 아픔을 주기 마련이다.
세상의 ‘디딤돌’이 되어야 할 종교가 세상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가 형이하학적 관심에 함몰되고 자기 확장과 맘모니즘의 포로가 된다면, 종교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종교가 그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칼 맑스’의 말대로 종교가 ‘치료제’가 아니라 단순한 ‘진통제’가 될 수 있다.
종교기관들이 본당과 교육관, 종교버스, 수양관, 기도원, 종교묘지 등의 외연(外延) 확장에만 몰두한다면, 이 시대의 또 다른 바벨탑을 쌓는 일이지 않을까? 이역만리 태평양을 지나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 땅에 와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시간까지 피땀 흘리며 수고한 분들의 값진 재화가 신실한 믿음을 따라 봉헌된다. 그런데 종교재정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은 불가침에 대한 도전이요, 신성모독이요, 믿음 없음의 객관적인 증거인가?
한국의 몇몇 교회들은 내부감사와 더불어 ‘공인회계법인’을 통하여 재정 감사를 받고 투명하게 재정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고멀었다. 투명하지 못한 재정집행은 ‘머리 잘린 삼손’처럼 종교적인 감동, 감화를 상실하게 만들고 무기력에 빠지기 쉬우며 공신력을 떨어뜨린다. 거대한 공룡이 되기 쉬운 종교단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단초는 자기 비움이요, 나눔이요, 사랑의 실천이요, 섬김에 있지 않을까?
인도의 비폭력 평화주의자이며 정신적 지주인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 Gandhi)가 말한 ‘사회의 7대악’을 되새김질해 본다. 1. 철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2. 도덕 없는 경제(Commerce without Morality) 3. 인격 없는 교육(Knowledge without Character) 4.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5. 윤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6.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7. 헌신 없는 종교(Worship without Sacrifice). ‘마하트마 간디’는 ‘헌신 없는 종교’는 사회악이라고 말한다. 자기성찰, 자정능력과 투명성을 상실한 종교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
종교단체가 세상의 본이 되지 못하고, 손가락질과 지탄의 대상이 되어도 그것조차도 인지(認知)하지 못하고 있다면 심한 중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필자를 포함하여 '교회공동체'의 뼈를 깎는 자성과 회개의 엎드림이 없이는 소외된 인간을 향한 진중한 영혼의 울림이 일어날 수 없다. 믿음과 사랑을 말하지만 사실은 월가(Wall street)의 신(神)을 핵심가치'(核心價値)로 더 숭배하는 폐쇄적이며 이중적인 가치관을 함께 허물어야 하지 않을까?
물량적 성장주의와 구원의 사유화, 세습화를 넘어서야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행함과 진실함'이 따를 때 그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종교재정의 건전성과 투명성 그리고 목적에 부합하는 적합성은 종교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바로미터’(Barometer) 이다.
<
이성일 목사(OMSC)>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