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롭던 일상 깨진 충격… 주민반응 양분, 독일정부의 난민 포용정책 갈등 단면 노출
▶ 살해범 난민가장 “55세 이혼남인 그가 19세 내 딸과 결혼 강요”, 피살 교사의 친구 “가족들 독일 정착 도우려 결혼 제안했을 것”

중세의 동화 속 같은 분위기를 가진 인구 7만명의 평화로운 소도시 셀레. 주민들은 지난 2월 발생한 아프간 난민 가장의 살인사건 충격에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다.
독일에 정착한 이란계 이민으로 고교 과학교사였던 메디 후쉬만트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헌신적 선생님이었을 뿐 아니라 지난해 독일로 대거 유입된 아랍계 새 난민을 돕는데 적극 앞장서 왔다. 그런 후쉬문트 교사가 지난 2월 자택 지하실에서 둔기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자 이곳 셀레의 주민들은 경악했다. 더구나 살해 용의자가 아프간에서 최근 흘러 들어와 후쉬만트의 도움을 받고 있던 난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충격은 더욱 커졌다.
살인사건 뉴스와 엇갈리는 살해 동기는 인구 7만명의 소도시, 영국의 로열 패밀리가 된 윈저가문의 뿌리라는 역사와 동화 속처럼 중세풍의 건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거리를 자랑하는 셀레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셀레를 벗어나, 지난 한해 100만 명 이상 독일로 유입된 난민에 대한 명암이 교차되면서 전국에서 불거진 갈등의 단면을 노출시키고 있다. 아랍과 북아프리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에 대한 독일정부의 포용정책이 난민들의 범죄 사건 증가와 난민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고 후쉬만트 자택 앞 추모의 꽃다발들도 시들어 버린지 오래지만 아직 셀레는 ‘갈등하는 독일’을 압축한 하나의 캡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범인이 잡혔다는 것은 그나마 안심이지만 주민들은 난민 포용에 대한 찬반의견으로 갈리면서 이 조용한 타운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셀레는 냉전이 끝난 후 폐쇄되었던 영국군 막사에 난민 수용소 설치를 신청했던,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한 도시다. 이미 3,000명의 난민이 살고 있으며 금년 8월까지 500명을 더 받을 계획이다.
더크-울리크 멘데 셀레 시장은 여전히 셀레시의 이 같은 난민포용 정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역신문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코멘트들은 다르다. 셀레시의 포용정책에 대해 부글거리는 일각의 반대와 분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솔직히 난민들에 대해 열렬히 환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29세 한 주민은 교사 살인사건 발생 시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은폐했다고 분개했다.
시장은 사건과 ‘난민’ 배경은 무관하다고 강조했으나 그렇다고 숨길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으며 수사당국도 “숨기는 것이 오히려 일이 크게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당일로 용의자가 난민임을 밝혔다.
지난해 12월31일 밤 독일 쾰른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처음에 용의자들이 북아프리카와 아랍계 난민들인 사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축소 발표했다가 진상이 언론에 폭로된 후 큰 파문을 일으켰던 실책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셀레 사건과 난민이라는 배경이 전혀 무관한 것인가도 확실치 않다.
후쉬만트 자신도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을 때 독일로 도피해온 난민이었다. 19세에 독일에 도착한 그는 대학 졸업, 시민권 취득, 공무원 신분의 교사 취업 등 완벽한 독일 정착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해 백만여 난민이 밀려들었을 때 그는 아랍어 통역으로 난민 지원에 적극 동참했다고 그의 친구이자 은퇴교사인 베르너 글레이서는 말한다.
셀레의 난민수용소에 들어온 난민 중 한명이 아프간에서 병든 아내와 6남매를 데리고 온 58세의 가장이었다. 그는 지난 1월 수용소에서 아파트로 이사했고 후쉬만트는 이들을 여러모로 도왔다고 글레이서는 전한다. “그자신이 난민이었으니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것을 알았으니까…” 입원한 아내를 방문하기도 했고 아이들의 신발도 사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월말 경찰이 밝힌 살해의 동기는 좀 달랐다. 범행을 자백한 아프간 가장은 55세의 이혼남인 후쉬만트가 자신의 19세 딸과의 결혼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에 그 일로 이야기하다 싸움이 격화되면서 살인까지로 치달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교사와 19세 딸과의 관계에 대한 어떤 증거도 확보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단언한 글레이서는 후쉬만트가 그들 난민가족이 독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결혼을 제안했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몇 차례 열린 후쉬만트 추모회에는 생전의 인기를 반영하듯 500~600명이 참석했으며 친구들은 성금도 모았다. 죽으면 고향인 테헤란에 묻히고 싶다던 그의 평소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성금은 그가 해오던 일, 18세 미만 난민 어린이들 돕기에 기부하게 된다. 멘데 시장은 범인의 가족들도 주민들이 계속 돌봐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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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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