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쉰들러와 노이트라<하>
▶ 건축 장인 느낌 쉰들러와 기계 기술 접목 노이트라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쉰들러와 노이트라 ‘모더니즘’ 추구한 건축가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쉰들러와 노이트라 ‘모더니즘’ 추구한 건축가](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6/04/20/20160420111340571.jpg)
쉰들러 주택에서 쉰들러의 공간. 왼쪽에 벽난로가 있고 오른쪽에 보이는 창 너머로 조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공간이 다. 오른쪽의 창을 모두 열면 마당과 안이 하나의 공간이 된다.
노이트라는 쉰들러의 대학 후배로 쉰들러가 졸업 작품 할 무렵 만난 이후로 계속 친분을 유지했다. 1892년생으로 쉰들러보다 5살 연하다. 둘다 대학 재학 시절 라이트의 건축 작품에 푹 빠지면서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쉰들러가 졸업(1914년)한 뒤 바로 라이트가 있는 시카고로 달려간데 반해 노이트라는 학교에 다니고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장교로 참전해야 했고 졸업도 늦어졌다. 나중에는 망설이다가 쉰들러의제안으로 쉰들러보다 9년 늦은 1923년이 되어서야 미국에 건너와 뉴욕과 시카고의 여러 사무실에서 잠깐씩 일을 했다.
노이트라는 쉰들러와는 다르게 라이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 대신 라이트의 보금자리인 위스콘신주 탈리에신에서 며칠 머물면서 라이트를 만날 수 있었다. 탈리에신은 원래 영국의 시인에서 유래되었지만 여기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제자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했던 생활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 당시만해도 건축은 사부와 제자 간의 도제 방식으로 일을 배웠던 것 같다. 사실 노이트라는 얼마간 여기 탈리에신에머물면서 라이트의 작업 분위기를 익히다가 미국 대륙을 건너 쉰들러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집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노이트라는 여기 LA에서 쉰들러의 일을 도우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쉰들러와 노이트라 모두 라이트와 함께 일한 시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라이트의 건축 작품이 그들의 건축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이트라가 로스앤젤레스의 쉰들러 집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 세계 건축계에 커다란 행사가 있었다. 1926년에 국제연합의 전신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본부 건물 건축 설계 공모전이 그것이다. 대지는스위스의 제네바였다. 여기에는 르꼬르뷔제를 비롯하여 바우하우스 출신 등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작품을 출품했다.
쉰들러는 노이트라와 함께 설계를 하여 출품했다. 그런데 여기서 둘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설계당시 쉰들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노이트라가 도와주는 역할을 했는데, 정작 현상 설계 접수 대장에는쉰들러의 이름이 빠져 있고 노이트라의 이름만 기재된 것이다. 이유는 설계안을 배달한 노이트라의 장인이 접수할 때 고의로 쉰들러 이름은 빼고 자신의 사위 이름만 기재했다는 것이다. 비록 이들의 설계안이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입선작에는 선정되어 설계 작품 전시회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제출 서류에는 쉰들러의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노이트라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 둘의 사이의 관계는 급속히 나빠지게 되었다.
결국 1929년 노이트라가 쉰들러의 집에서 나왔고 이 둘은 각자 따로 활동하게 된다. 노이트라의 이름은 국제연맹 본부 현상 설계 이후 건축계에서 회자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에 CIAM 근대건축 국제회의에 미국을 대표하여 참석할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의 작품과 글을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을 하는 등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서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31년부터는 로스앤젤레스에 돌아와 그의 사무실을 열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나아갔다. 대표작으로는 VDL 주택, 로스앤젤레스 기록 보관소 등 주택부터 관공서까지 다양하다. 로스앤젤레스에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작품이 분포하고 있다.
반면에 쉰들러는 대개가 주택이었고 작품은 대부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다. 그래서인지 생전에는노이트라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 했다. 그렇다고 그의 건축이 노이트라에 비해 결코 뒤쳐지는 것은아니다. 수많은 로스앤젤레스의 후배건축가들이 그의 건축에서 깊은 감명을 얻었다. 그가 남긴 건축계의 명언을 하나 소개한다.“ 건축가는 마침내 예술의 수단을 발견했다. 공간이다.” (The architect has finally discoveredthe medium of his art: SPACE)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하면 둘 다 모던 건축을 추구했지만, 쉰들러는모더니즘 속에서 건축 장인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을 만들어냈고 노이트라는 모더니즘에 기계기술을 접목하려고 시도했다. 대표작 쉰들러 주택(by 쉰들러)과 VDL 주택(by 노이트라)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로벨 주택’이 라는 다른 재미난 사건이 있다. 다음주에 계속 설명한다.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쉰들러와 노이트라 ‘모더니즘’ 추구한 건축가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쉰들러와 노이트라 ‘모더니즘’ 추구한 건축가](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6/04/20/20160420111340572.jpg)
VDL 주택의 모습. 오른쪽 아래에 보이 는 레일을 따라 벽 전체가 움직이게 했다. 기계 또는 기술을 건축에 접목하려한 시도가 느껴진다.
쉰들러 주택(Schindler House) 주소: 835 N Kings Rd. West Hollywood, CA90069 VDL 주택(VDL House) 주소: 2300 Silver Lake Blvd. Los Angeles, CA90039
<건축가 김태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geoc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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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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