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로벨 주택<하>
▶ 쉰들러의 해변 주택… 디자인 장인정신 느껴져 노이트라의 건강주택… 전형적인 모더니즘 건물

진입로에서 바라본 로벨 건강주택의 모습. 아래로 경사진 대지여서, 진입로에서 집을 아래로 지었다.
쉰들러가 로벨 해변 주택 설계를 마무리하고 있을 무렵, 쉰들러 주택에는 쉰들러의 고향 후배이자 친구인 노이트라의 가족이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쉰들러 주택을 같이 짓고 살던 시공업자 부부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집에 빈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머물면서 노이트라가 이주택 설계를 돕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이트라는 쉰들러를 부러워 했을 것이다‘. 나도 과연 이런 이상적인 건축주를 만날 수 있을까?' 이 당시만해도 쉰들러와 로벨의 관계는 아마도 와이먼과 브래드베리 만큼 이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시공과정에서 쉰들러와 로벨 사이에 문제가 생기자 노이트라가 중간에 끼어들 기회가 생겼다.
그는 먼저 로벨의 화를 가라 앉히려고 했다. 그리고 로벨의 해변 주택은 콘크리트 대신 철골로 짓는 것이더 어울렸을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다. 노이트라는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온 후, 뉴욕과 시카고에 머물면서 잠시나마 철골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설계사무실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서 한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던 것을 도와주는 수준이었다.
1930년 즈음이면 시카고는 이미 철골로 건물을 짓는 것이 보편화됐던 시절이다. 노이트라는 몇 개월 되지는 않지만 이 경험을 부풀려 이용해서 로벨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노이트라도 쉰들러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서 분리파의 가르침을 받았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공통점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쉰들러는 다분히 다혈질적이었던 반면, 노이트라는 상대방을 잘 구슬려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 좀 더 있었던 것 같다. 노이트라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로벨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로벨이 얼마나 부자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곧이어 그가 또 하나의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헐리웃 인근 로스필리스 언덕 중턱에 대지를 마련했다.
이번에는 쉰들러의 친구 노이트라에게 설계를 맡겼다. 대지 조건은 완전히 달랐다. 전의 것은 바닷가에 서있고 이번에는 산 중턱에 앉게 되었다. 주변 환경은 상반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로벨의 건축관에는 변함이 없었다. 건강한 삶을 위한 건축은 어떠해야 하나?사실 노이트라가 이 프로젝트 이전에 실제로 자신의 책임으로 집을 지어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이 주택이그에게 최초의 실제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경사진 대지에 파일을 박아 기초를마련하고 그 위에 공장제 철제 구조물로 뼈대를 만들어야 했다. 실무가 처음이었고 LA도 낯선 도시였기에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예상 견적과 실제 공사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쉰들러와 달리 노이트라는 이 상황을 별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 했다.
대지는 진입로에서 들어오면 거의 절벽처럼 내려간다. 이렇게 어려운 땅에 집을 앉혔다. 진입로에서 들어오면, 반 층 정도 계단을 내려 간 후 건물로 들어간다. 이때는 건물이 작아 보인다. 하지만 건물은 전체적으로 3층 규모다. 위로 아닌 아래로 건물을 지었다. 아래서 보면 상당히 큰 건물로 보인다. 진입로와 이어진 3층에는침실 공간을, 2층에는 거실과 부엌을, 가장 낮은 1층에는 수영장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대개 동선의 깊이로 보면, 침실을 진입로에서 가장 먼 곳에 두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했다. 대신 침실은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 그리고 중간층에 있는 거실은 3층의 일부를 비워서 2층 높이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햇빛 가득한 시원한 공간이다. 거실과 이어지는 계단 너머에는 아늑한 마당이 자리한다.
이 집의 실내는 모던 회화에서 보이는 큐비즘 분위기가 느껴진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를 상당히 좋아해서 헨리 포드 모델 A의 헤드라이트를 계단에 붙이기도 했다. 노이트라가 최신 기술을 건축에 적용하려한의도가 보인다. 쉰들러가 로벨 해변 주택에서 썼던 야외 벽난로와 낮잠자는 공간이 이 집에도 쓰였다. 1929년에 완성된 이 집은 로벨 건강 주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 로벨의 2개의 주택은 마무리가 되었다. 첫 번째 해변주택의 경우 로벨이 언론 매체나 건축계에 언급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 언급 조차하기 싫을 정도로 정나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두 번째 건강주택의 경우, 건축주 로벨은 아주 흡족해 했고 이집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었다. 유명한 건축평론가 프램프턴은 이 주택을 ‘국제주의 양식의 최고봉’ 이라고 치켜 세웠다. 이후 노이트라는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반면 쉰들러는 상대적으로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만 머물게 되었다.
1925년에 로벨 해변 주택을 설계할 때만 해도 쉰들러가 의기양양했지만 오래지 않아 로벨 건강 주택 이후에는 노이트라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쉰들러의 작품에서는 디자인의 장인정신 같은 것이 느껴지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서 보다호감이 간다. 노이트라에게서는 당시 시대를 이끌던 전형적인 국제주의 모더니즘 건물의 기계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쉰들러의 작품은 나중에 탐 메인의 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노이트라의 작품은 케이스 스터디 주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3층은 개인 방, 2층은 거실과 마당이고 1층은 수영장과 놀이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건축가 김태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geocrow
<
건축가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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