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찢어지는 가난을 딛고 부를 일군 5명, 크리스 가드너 “어머니가 심어준 자신감이 힘”
▶ 흑인여성 번스, 40년 한우물 제록스 회장 올라, 롤링은 해리 포터 원고 수십 차례 퇴짜 ‘쓴 잔’
미국인의 15%는 빈곤한 삶을 산다.
센서스국 자료에 따르면 2명의 성인과 2명의 미성년자로 구성된 4인 가족의연방 빈곤기준선은 연 2만9,000달러다. 다시 말해 가계소득이 월 2,400여 달러인 4인 가족에겐 공식적인 ‘가난의 낙인’이 찍힌다는 얘기다.
현재 이 그룹에 속한 미국인은 4,670만 명. 이 중 일부에게 가난은 일시적 ‘멍에’지만 나머지에게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질곡’이다.
UC데이비스의 자료는 가난의 늪으로 떨어져 1년을 지낸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벙커 탈출’에 성공하는 반면 7년을 빈곤하게 보낸 사람들 중 가난의 문턱을넘어서는 사람의 비율은 13%에 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난의 순환고리를 깨뜨리는 최상의 방법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의견이 갈린다. 빈민들의 중산층 편입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교육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지만 이 역시 필요충분조건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고임금 일자리 접근권 역시 가난의 빗장을 여는 열쇠다. 경제분야에 대한지식(financial literacy)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 찢어지게 가난한미국인들에게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가난에 마침표를 찍기는 쉽지 않다.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조직적인 가난을 제거하기 어렵다해서 개인적으로 빈곤을 극복할 수없는 것은 아니다. USA투데이의 최근 기사를 바탕으로 가난을 딛고 일어서부를 일군 다섯 명의 인사를 소개한다.

크리스 가드너
1. 크리스 가드너
윌 스미스가 출연한 영화 ‘행복의 추구’(The Pursuit of Happiness)를 보았다면 크리스 가드너의 스토리를 알 것이다.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가드너는 1980년대 초 어린 아들과 함께 홈리스 생활을 했다.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고, 교회 셸터신세를 지면서도 가드너는 금융서비스사인 ‘딘 위터 레이놀즈’가 실시하는 무보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당시 가드너의 동료들은 그가 홈리스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주식브로커로 성공을 거두었고 결국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가드너는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심어준 자신감을 꼽았다. 어머니는 그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환경도 뛰어넘을 수 있다”며 “너는 언젠가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었다.

앤드류 카네기
2. 앤드류 카네기
남북전쟁 이후 ‘대호황 시대’의 벼락부자인 앤드류 카네기는 자수성가해 미국 최고의 부자로 등극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카네기는 1835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방직공이었던 아버지는 산업혁명 여파로 소규모 공장들이 문을 닫자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카네기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도와 면직공장에 취업했고 뒤이어 ‘펜실베니아 레일로드’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독서광이었던 야심만만한 ‘독학 청년’ 카네기는 고속승진을 거듭했고 타고난 사업가의 감각을 바탕으로 창업에 성공했으며 결국 ‘철강 제국’을 세웠다.
막대한 부를 쌓아올린 후 현직에서 은퇴한 카네기는 카네기-멜론 대학을 설립하고 세계 각지의 도서관 수천 곳에 기금을 제공하는 등 독지가로 활동했다.
지식과 교육에 대한 접근권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성공으로 이끈다고 굳게 믿었던 그는 “가장 생산적으로 돈을 사용하는 방법은 공공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우르술라 번스
3. 우르술라 번스
우르술라 번스는 뉴욕 로우 이스트 사이드의 저소득층 주택단지에서 싱글맘의 딸로 성장했다. 흑인이고 계집애인데다 가난하기까지 한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일찌감치 삼진아웃을 당한 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번스의 모친은 딸에게 최고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했다.
엔지니어를 꿈꾸던 번스는 대학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좌절을 겪기도 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배가해 브루클린 폴리테크닉 대학을 졸업했고 제록스에서 인턴직을 시작했다. 그 이후 40년간 꾸준히 한 우물을 판 그녀는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S&P 500대 기업에 속한 제록스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존 폴 디조리아
4. 존 폴 디조리아
존 폴 미첼 시스템과 패트론 스피리츠의 창업주인 억만장자 존 폴 디조리아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디조리아가 두 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면서 그는 위탁가정에 맡겨졌고 청소년기에는 갱들과 어울렸다. 고교 졸업 후 해군에 입대했으나 퇴역 후 잠시 홈리스로 지냈으며 병을 주워 연명했다.
디조리아는 자신의 성공을 강력한 노동윤리와 인내심의 결과로 돌렸다.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공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모든 일을 한다”고 말했다. “눈앞에서 10번째 문이 닫힌다면 웃는 얼굴로 11번째 문으로 힘차게 걸어가라”는 것이 그가 전하는 비즈니스 성공철학이다.

J. K. 롤링
5. J. K. 롤링
해리 포터를 만들어낸 여류작가 J. K. 롤링은 지금은 어엿한 백만장자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웰페어에 의존해 생활하는 이혼녀 싱글맘이었다.
그녀는 해리 포터 1편의 원고를 들고 수십 군데의 출판사를 찾아갔으나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롤링은 2008년 하버드대학 졸업식 축사를 통해 “결혼생활이 내부폭발을 일으키며 단명으로 끝난 뒤 나는 직업이 없는 편모가 되었으며 홈리스 신세를 간신히 면했을 뿐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다”며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나는 내가 아는 최대의 실패자였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그러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나 자신에 관한 성찰을 가르쳤다”며 “극심한 시련을 통해 나는 내 스스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의지와 절제의 소유자임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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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투데이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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