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빅터그루언, 샤핑몰의 발명가<하>
▶ 샤핑과 휴식 즐길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해 인기… 한인타운 시온마켓 건물 코리아타운 플라자, 그루언 사무소에서 설계

오렌지카운티의 코스타메사에 있는 사우스코스트 플라자.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샤핑몰이다. 연매출이 15억달러가 넘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쇼핑몰이 발명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자.
1950년이면 한국은 전쟁으로 심각한 난리를 겪게 되지만 미국은 2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의 기쁨을 만끽하는 시기였다. 일반적인 가정은 대개 자동차 1대쯤은 갖는 것이 보편화되어 보다 깨끗한 도시 외곽 신도시로주거지를 옮겨갔다. 그 까닭에 상대적으로 낡은 도심은 빈 건물이 많아지고 범죄가 더 늘어나게 되었다. 마구잡이로 건설된 도시 외곽의 신도시는 베드타운으로의 기능 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도시에 들어선 상업시설이라는 것도 그저 길 따라 기존의 똑같은 건물을 지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루언은 이런 신도시 시민들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상업시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우선 보행자나 버스 이용자보다는 자가용 이용자를 위한 상가를 염두에 두었다. 신도시에서는 커다란 대지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사방에서 자동차 진입로를 만들고 가운데에 상가를 배치했다. 상가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으로 보행자만을 위한 공간이 된다. 사람들은 자동차에 구애받지 않고 거지들로부터 방해받지도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소매점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원스탑 샤핑이 가능해졌다.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새 공간에서 쾌적한 샤핑을 한 후, 자동차를 타고 각자의 집에 돌아가면 되었다. 샤핑몰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상가일 뿐만 아니라 휴식을 즐기는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다.
이 개념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상업건축 건축주들은 그루언을 찾아와 앞 다투어 샤핑몰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다.
이 덕에 비공식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업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인근에도 그가 설계한 샤핑몰이 있다. 1960년대에 오렌지 카운티에 지어진 사우스코스트 플라자(South CoastPlaza)로 초기 샤핑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개보수도 하고 증축도 했다. 요즘도 사람들이 많이찾는 명소로,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샤핑몰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점점 늘어나는 샤핑몰은 그에게 걱정거리를 안겨 주기도 했다. 어디에서는 샤핑몰이 새로 지어지고 있었지만 어디에서는 지어진지 오래 지나지 않아 문 닫는 경우도 많아졌다. 샤핑몰이 인기가 있다 보니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지어졌고 그 도시 실정에 안 맞으면 문을 닫고 빈건물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변을 걷는 보행자에게 샤핑몰이 주차장이라는 ‘해자(垓子, moat)로 둘러싸인 도시 속의 하나의 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과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홀로 자기만족하며 서 있다. 주차장 주변을 걸어 다니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삭막한 도시의 원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를 그루언의 잘못이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이것은 자동차 발명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다고 자동차 발명가를 비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 잘된 점은 계승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갈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분명 쇼핑몰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을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유명 건축가 필립 잔슨은 그를‘미국인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 진정한 예술과 건축을 창조한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모순 같아 보이지만 그는 분명히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주의를 꿈꾸었지만 자본가가 선호하는 건축가였고 건물 사용자를 위한 설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건물 사용자들로부터 버림받기도 했다. 이렇게 흉물스레 버려진 샤핑몰을 ‘데드 몰’(dead mall)이라 부른다. 2004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렇게 버려진 샤핑몰을 되살리는 방안을 가지고 설계안을 공모한 적도 있다. 아직 특별한 성과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보다 사람들을 위하고 대중교통과 어우러진 상업공간에 대해 진지하게 되짚어 볼 시간이다.
오늘날의 샤핑몰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나의 정답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코리아타운 인근의 그로브몰(the Grove)과 글렌데일의 아메리카나(the Americana at Brand)도 하나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로브몰은 넓은 야외 주차장 대신 한쪽에 주차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기후를 즐기기 위해 실내 보행로 대신 상쾌한 야외 산책로를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같은 건축주가 지은 아메리카나는 여기에 주거공간을 추가했다. 아래층은 상가가들어서고 이 위에 주거공간을 마련해서 주상복합 시설로 만들었다. 아직은 낯설게 느껴져서인지 완공한 지1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유닛이 많아 보인다.
샤핑몰은 사람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눈을 유혹하는 화려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끌어들이는 오브제일 필요는 없다. 대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시민들이 물건을사러 샤핑몰을 찾기도 하지만 그저 산책 삼아 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맞는 또 다른 그루언을기다려 본다. 그루언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세운 건축사 사무소 Gruen Associates는 아직도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대형 건축 설계사무소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코리아타운 플라자(1987)와시티센터(시온마켓 건물: 2008)가 그루언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설계한 건물이다

글렌데일에 있는 아메리카나 몰. 주상복합을 시도했다. 그루언이 발명한 샤핑몰 의 개념을 도심 속에 적용하기 위해 주차건물을 별도로 짓고 안에 멋진 공공 마당을 마련했다.
<건축가 김태식>블로그
http://blog.naver.com/geocrow
<
건축가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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