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모포시스의 탄생, 시련과 성공<상>
▶ 모포시스 수장 ‘탐 메인’ 2005년 프리츠커 상 수상, 20년 동업 ‘로톤디’ 독립 메인 혼자 모포시스 이끌어

서울 신촌에 있는 썬타워, 모포시스가 한국에 지은 유일한 건물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물로 한국인 이의성이 담당 했다. [사진 김동휘]
LA를 대표하는 건축 설계사무소를 꼽는다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이 모포시스(Morphosis)이다. 탐 메인(Thom Mayne)이라는 건축가가 40여년 동안 이끌어 오고 있다.
이번에는 모포시스의 수장 탐 메인에 대해 알아본다. 그는 1944년 생으로 초등학교 때 로스앤젤레스로 이사 왔다. USC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했다.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건축활동을 하고 있고 세계 여러 곳에 그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2005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했다.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타 건축가다.
한국에도 작품이 하나 있다. 1997년에 서울 신촌에 지어진 썬타워로이 건물을 통해 그가 어떤 스타일로설계하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군계일학으로 표현해도 될 것 같다.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띈다.
2016년 현재 세계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가 실은 USC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만 해도그다지 건축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USC 건축 수업은 노이트라에서부터 코니히로 내려오는 케이스 스터디 주택 설계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여, 상자 형태의 모더니즘 계열에서 크게 벗어나지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딱딱한 건축 접근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졸업 설계할 때에는 내키지 않아 빈 패널을 걸어 놓고, 반항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한 후에도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해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교 1년 선배 짐 스태포드를 통해 건축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르 꼬르뷔제, 루이스 칸 등을 다시 접하게 되었고, 당시 건축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눈으로 살펴 보게 되었다.
또한 레이 케이프를 만나면서, 그의 건축관이 보다 성숙해진다.
이 때 마침 칼폴리 포모나에 건축과가 자리잡는데 일조하고, 케이프가 다시 칼폴리를 나와 싸이악을 세울때에도 뜻을 같이 한다. 이후 케이프와 메인은 싸이악을 대표하는 교수가 되었다.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에 스태포드와 메인이 세운 사무실이 모포시스였다. 때는 1972년으로 이 둘은 당시 아방가르드 건축 모임인 아키그램(archigram)에 푹 빠져 있었다. 이들은 기존 건축에 대한 반항아같았다. 아키그램을 대표하는 피터 쿡과 론 헤론의 디자인은 공상 과학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형태로 건축을 꿈꾸었다. 기존의 건축계에서는 이런 디자인은 건축의 범주에 넣어주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메인은 이들에게서 그의 건축의 방향을 찾았다. 아키그램의 건축은 세기가 바뀌면서, 하나 둘 현실로 지어지게 된다. 그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메인이 스태포드와 헤어지고, 당시 싸이악 학생이던 마이클 로톤디와 함께 모포시스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메인과 로톤디는 모포시스를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이들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방적인 사제관계라기보다는 동업자로 보는 게 가까울 듯하다.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설계하고, 현장에서 실제 지으면서 건축의 본질을 탐구했다.
메인은 중간에 1년 동안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 설계를 공부하면서, 건축의 관점을 넓히기도 했다.
이 시기 지어진 대표작품으로 베벌리힐스의 케이트 만틸리니 식당(Kate Mantilini restaurant)이 있다(1986). 새로 지은 것은 아니고, 건물 개보수 작업이었다. 2014년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더 이상 내부를 구경할 수 없게되었다.
현재는 이 건물을 문화재로 등록해서 보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이렇듯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아는 사람의 집이나 상점을 고쳐 주는 것이었다. 아직 건축계에서는 탐 메인을알아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97년에 한국에 완성된 썬타워 이전까지만 해도 그의 일거리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메인 자신도 나이 50이 넘어서까지 내세울 만한 작품이 별로 없다고 털어 놓았다. 사업으로서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하고 싶은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상황이었다. 건축계에서는 유망한 건축가로 촉망받기도 했지만, 한쪽에서는 종이건축가(paper architect)로 불리기도 했다. 집을 실제로 짓지는 못 하고, 도면을 그리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아직 이들을 알아주는 건축주를 만나지 못 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보니, 동업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20년가까이 동고동락하면서 회사를 이끌던 메인과 로톤디는 더 이상 함께 나아가기를 포기한다.
로톤디는 1991년 모포시스를 떠나, 독립하여 로토 건축사 사무소를 설립한다. 이후 메인 혼자 모포시스를이끌어 가게 되었다. 무엇을 하던지 생계를 위해 살아갈 길을 찾아야만했다.

1986년에 재보수한 케이트 만틸리니 식당(Kate Mantilini restaurant). 2014년에는 식당이 문을 닫아서 더 이상 내부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문화재 지정을 추진중이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geocrow
<
건축가 김태식>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