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 White House
▶ 내부장식은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키여사의 작품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이다.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는 부시 대통령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 위로부터 백악관 집무실, 비상 연결 전화.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 발발 다음날 의회에 갈 때 FBI가 압수한 알 카포네 방탄차를 타고 갔다.1824년 먼로 대통령 시절 지은 South Portico. 많은 의전이 이곳에서 열린다. <황의섭 사진작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지금의 대통령 집무실은
F. 루스벨트 대통령때 완성
알카포네의 방탄차
워싱턴을 방문하는 분들을 안내를 하게 될 때에 가장 많이 안내하는 곳을 꼽으라면 의사당, 백악관, 링컨 기념관 그리고 아마도 스미소니언박물관 몇 개일 것이다. 내 딴에는 워싱턴 기행을 시리즈로 쓰고 있으니 백악관을 써야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쓰려고 하니, 사진도 백악관의 내부가 아니라 백악관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 전부요, 또 백악관 내부를 설명할 수도 없고 해서 망설였다.
그러던 중 텍사스 달라스에 사는 손아래 동서가 글 하나를 보내 왔다. 1941년 12월7일 전쟁 발발 다음날 프랭클린 루스벨트(F. Roosevelt) 대통령이 의사당에 가서 연설을 하게 되어 있는데 당시 대통령 전용차는 법으로 예산이 750달러 이상을 넘을 수 없었기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차는 아주 빈약했다. 전쟁 발발이란 비상사태에 대통령이 의회로 가는 동안 안전을 걱정을 하던 경호원들이 마침 전설의 암흑가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의 방탄차를 미 재무부가 압수한 것이 생각이 나서 그 차를 부랴부랴 가져다가 그 차를 타고 의사당에 갔다는 글이었다.
비밀경호부대 3천명
아하! 그렇구나, 백악관을 안내하는 기행은 불가능하지만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 이야기 하듯 백악관에 얽힌 이야기나 써 보자하고 마음을 정했다. 사실은 글을 쓰려고 백악관 방문 신청을 할까 해서 알아보니 나의 지역 출신 하원의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날짜 또한 언제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를 했다.
그러면서 옛날 생각이 나며 아쉬움이 더해졌다. 기억하건데 아마도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이었는데, 버스를 전세를 내어 백악관까지 갔었으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나는 ‘언제 다시 시간이 있을 때 오면 되지’ 하면서 버스 안에서 노닥거리던 생각이 새삼 났다는 말이다.
백악관하면 건물 자체에 대한 것보다 정부형태에 대한 관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백악관은 부통령 집무실이 있는 소위 아이젠하워 행정빌딩, 블레어 하우스를 포함한 것을 가리키며, 어쩌면 주위에 구멍가게 정도 크기에 이름이 이상한 무역회사이니, 정비 회사이니 하며 이름을 붙인 건물들에 3,000여명의 비밀 경호부대가 있다니 이것까지 포함해야 할지 모르겠다.
건물 명칭에 대해서
우선 백악관에 관한 역사가 담긴 이야기보다 나 자신도 잘못 알고 있는 것부터 바로 잡아야겠다. 백악관이 이름 그대로 ‘White House’로 불리게 된 것이 1812년에 발발한 제 2차 미영전쟁 때에 영국군이 불을 질러 건물 외벽이 까맣게 되어 이를 흰색으로 칠해서 그 후 White House 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나는 믿었고 또 그렇다고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미영 전쟁이 나기 전 1811년에 White House 라고 쓴 기록이 나오고 속설로는 조지 워싱턴 부인 마샤(Martha)가 살던 집을 white house 라고 불린 것에서 유래 했다는 말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역사적 사실은 대통령 궁(President’s Palace) 또는 맨션(Mansion)으로 불리던 대통령 관저가 1901년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으로 편지에 White House 라고 썼고 그리고 그 후 프랭클린 대통령 때에 공식 문서에 White House 라고 쓰기 시작했다.
건물의 역사
건물이 지어진 것은 워싱턴 D.C.를 설계한 랑팡(Piere LanFant)이 공모를 해서 뽑힌 아이랜드 출신 제임스 호밴(James Hoban)이 1792년 착공하여 1802년 완공되었다.
건물 착공에 처음부터 관여했던 조지 워싱턴은 이 관저에 살지는 못했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잠깐 살았으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어 자재 공급이 쉬운 Aquia Creek의 사암과 석회, 녹말가루로 외벽을 발라서 흰색이 된 것이다.
1812년 2차 미영전쟁 후 1815년부터 3년간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있었고, 1824년 먼로 대통령 때에 South Portico를 지었고, 태프트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Oval Office)를 지었다가 화재로 F. Roosevelt 대통령이 오늘의 집무실 Oval Office를 지었다. 그 후 건물이 너무 낡아 거의 허물어질 무렵인 1949년부터 2년에 걸쳐 트루만 대통령이 블레어 하우스로 거처를 옮겨 살기까지 하면서 대대적으로 거의 새로이 5백83만2천달러를 들여 지었다(처음 예산 책정이 40만 달러이었다니 거의 15배가 들어간 셈이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키 여사가 오늘날의 호화스러운 내부 치장을 완료한 것이다.
낙수
백악관 두 대통령의 기막힌 그러나 우연(?)의 이야기이다.
링컨 대통령은 1846년 태어났고, 케네디 대통령은 1946년에 태어났다. 링컨은 1860년 대통령이 되었고, 케네디는 1960년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의 후계자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1808년 태어났고, 케네디의 후계자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08년 태어났다.
링컨의 암살범 존 부스는 1838년생이고 케네디 암살범 헨리 오스왈드는 1938년생이다. 링컨 암살범은 극장에서 암살하고 창고에서 잡혔고, 케네디 암살범은 창고에서 암살하고 극장에서 잡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손자에게 유언을 하려 한다. 2046년에 태어난 나의 증손자, 증손녀가 있다면, 절대 대통령에 출마를 하지 말도록 말이다. 비명의 주인공은 되지 말아야 하겠기에 말이다. 끝으로 여러 자료를 주신 장수영 선배, 유홍렬 후배 그리고 황휘섭 사진작가의 사진 제공에 감사를 드린다.
<
이영묵 전 워싱턴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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