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 실력 재능 갖춰도 인터뷰 기회조차 없어 재고용 평균 6개월 걸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 인근에 거주하는 대릴 워런은 50세 되던 해 BMW 딜러십의 세일즈맨 자리를 꿰찼다. ‘외부인’들에겐 별 것 아닌 듯 보일지 몰라도 주로 부유한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고급차 판매원은 세일즈 분야에선 ‘드림 잡’(dream job)으로 통한다.
제약회사와 식품서비스사의 외판원으로 잔뼈가 굵은 워런은 BMW로 옮겨간 첫 해 그가 소속된 딜러십의 ‘탑 셀러로 등극하면서 7만달러의 세후 소득을 올렸다. 이듬해에는 첫 해보다 더 많은 차를 팔았지만 수입은 오히려 1만달러가 줄어들었다.
세일즈맨에게 BMW 매장은 영화 ‘헝거 게임’(Hunger Game)을 연상시키는 이판사판의 각축장이다. 무한경쟁의 무대에서 외판원들은 실적을 올리느라 죽을 힘까지 쏟아 붓는다.
워런은 샬롯 외곽의 딜러십에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했다. 문을 닫을 즈음에 손님이 들어오면 그가 떠날 때가 퇴근시간이었다. 주당 6일 근무가 정상이고 월말에는 일요일까지 출근해야 했다.
BMW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 그의 몸은 아작이 났다. 처음에는 허리통증이 찾아오더니 몸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공황장애가 일어났고 고혈압과 우울증이 뒤따랐다.
밤에 늦게 들어와 독한 술을 한 두잔 마시며 약혼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곯아 떨어지는 판박이 일과가 끝없이 이어졌다.
약혼녀의 강권으로 워런은 지난 5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예상대로 회사는 전혀 만류하지 않았다. “싼 값에 BMW를 뽑을 수 있고 두둑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약속만으로 팔팔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를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54세인 워런은 뮤직 스토어에서 시급 10달러짜리 파트타임 일을 하며 그동안 모아둔 비상금을 까먹고 있다. 물론 베니핏 따위는 기대조차 못한다.
워런처럼 인생 중반기에 이전의 일자리에 버금할만한 직장을 잡지 못해 애태우는 백수와 반실직자들이 적지 않다.
45-54세 연령대에 속한 이들은 높은 자살률, 마약과 알콜 남용 등의 공통점을 지니며 백인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은 “이로 인해 1990년대 말 10만명 당 381명이었던 중년 미국인의 사망률이 지금은 415명으로 늘어났다”며 “고졸 이하 근로자에게 돌아갈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중년의 위기’를 초래하는 주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노동시장에서 50세 이상, 심지어 45세 이상의 근로자들은 ‘신규 취업불가’ 인력으로 꼽힌다.
경기대침체(Great Recession)는 전 연령대에 걸쳐 대규모 실업사태를 불러왔지만 최대 피해자는 재취업이 힘든 나이든 근로자들이었다.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올가 아길라는 자신도 취업불가 인력에 속한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56세인 그녀는 2년 전 레이오프를 당했다.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구했지만 허사였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마지막 직장인 ‘어라이즈 버추얼 솔류션스’에서 10여년간 경험을 쌓았지만 지난 2년간 그녀에게 취업 인터뷰 기회를 제공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다행히 남편이 고임금 일자리를 갖고 있어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50대에 이처럼 무능하고 초라한 삶을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톰 페레즈 연방 노동부장관에 따르면 “중년 근로자들의 위기는 미국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다. 그의 지적대로 50세 이상의 중년들은 재능과 실력, 경험을 갖추었으면서도 노동시장에서 완전한 ‘쉰밥’ 대접을 받는다.
연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45세 이상의 실직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잡기까지 평균 9개월을 잡 리서치로 보낸다. 반면 35-44세 연령대의 실직자들이 재고용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6개월이다.
상당수의 나이든 근로자들은 새 직장을 잡으려 기를 쓰다 지쳐 두 손을 들고 만다. 취업포기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미국인 근로자들의 비율은 1970년대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젊은 근로자들은 추가 교육과 재훈련을 통해 고임금 일자리에 접근이 가능하지만 나이든 근로자들을 도울 방법은 없다.
페레즈 장관은 6개월 이상 실직상태인 근로자들을 도와줄 최상의 도구로 ‘워커 어포튜니티 택스 크레딧’(Worker Opportunity Tax Credit)을 꼽았다.
장기 실직자를 시범적으로 채용하는 고용주에게 1,000달러에서 1만 달러사이의 세금 크레딧을 제공하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능력을 인정받은 나이든 임시직 근로자는 시범기간이 끝난 뒤 정식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페레즈 장관은 연방의회가 지난해 말 이 프로그램의 연장을 승인했다며 기꺼워했지만 정작 문제는 참여업체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자 취업지원서가 봇물을 이루었고 고용주들은 직원 채용에 더욱 까다로워졌다.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최근 몇 년간 경기회복에 고무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신규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2010년 680만 명을 헤아리던 6개월 이상 장기 실직자의 수는 2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아길라는 미국이 완전고용에 근접했다는 주장에 어이없어 한다. 그녀는 연방 노동부가 공식적으로 45세 이상의 장기 미취업자로 분류한 75만 명 가운데 한명이다.
아길라는 “내가 재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이 때문이 분명하다”며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게 유일하고도 타당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
김영경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