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호세 황종우 선생***경기도 안산 샘골 천곡학원 강사로 헌신

올해 102세의 황종우 선생이 산호세 자택에서 1930년대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했던 내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손에 든 책은 일제시대 농촌 계몽운동을 기록한 홍석창 목사의 저서 ‘최용신과 샘골마을 사람들’
산호세 거주하는 황종우선생(102세)이 일제치하에 독립운동가 최용신(崔容信)을 도와 문맹 퇴치와 농촌 계몽운동에 헌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종우 선생이 농촌계몽을 위해 교사로 봉직한 천곡(泉谷)학원은 경기도 안산시 천곡(샘골.당시는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사리)에 농촌 계몽운동의 선구자 최용신(1909-1933)이 1931년 천곡강습소로 시작한 학교이다.
황종우 선생이 이와같이 일제시대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한 사실은 최근 홍석창 목사(오산지방 동탄교회 원로 목사)가 출간(도서출판 영음사 간행)한 ‘최용신과 샘골마을 사람들’저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 저서에 의하면 황종우 선생은 1931년 조선여자기독청년회 총무 김활란 박사 휘하의 고 최용신 선생과 함께 당시 수원군 반월면 사리 천곡마을에 문맹퇴치및 농어촌 계몽운동을 위해 천곡 학원을 개설했다.
천곡학원은 한국문화를 말살 시키렸던 간악한 왜국정책에 맞서 후세 교화에 열중,다대한 성과를 거두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호세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황종우 선생은 “당시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후 우수한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인 교장(대산)의 통역 비서로 일하고 있을때 최용신 선생이 집으로 찾아와 학생은 많은데 여자 혼자 가르치기 힘드니 도와달라고 요청하여 교사로 봉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종우 선생은 “ 1932년 4월 천곡학원에 가보니 소학교(국민학교)를 못간 학생들이 주체 할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어 교사가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학원교사로 일하기 위해 일본인 교장에게 통역을 그만두고 한민족을 위한 농촌 계몽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하자 처음에는 갑짝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그간 수고했다면서 칭찬과 아울러 일을 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천곡학원에서는 국어와 산수, 역사, 음악등의 과목이 있었으며 최용신과 황종우 선생은 조선역사를 맡아 강의를 했다. 수업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이었으나 학교 명성이 높아져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을 크게 도왔다고 밝혔다.
황종우 선생은 수원경찰서에서 호출 “학원운영을 그만두라. 고문하겠다”고 협박할 때 “가르치는 것이 왜 범죄이냐. 일본정부에서 할일을 우리가 대신한다”고 답변해 학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종우 선생이 민족교육을 위해 봉사한 천곡학원과 최용신은 나중에 심훈의 ‘상록수’로 소설화 되었으며 루씨유아원과 천곡교회,최용신 묘소는 향토유적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번에 황종우 선생의 농촌 계몽운동 참여를 밝힌 ‘최용신과 샘골마을 사람들’을 출간한 홍석창 목사는 현재 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홍삼열 목사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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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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