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세대 정체성 교육, 왜 이순신을 택했나?
왼쪽부터 김명희 회장, 이승민 회장, 박은혜 교사.
400여 년 전 남해 바다에서 구국의 격랑을 불러일으켰던 이순신이 미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가 이순신미주교육본부와 손을 잡고 지난해 처음으로 미 전역의 한국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순신 글쓰기 공모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충무공의 애국, 애민의 정신을 한인 2세대들에게 고취시키기 위해 마련한 이번 공모전을 준비한 주역들을 만나 이순신 장군을 통한 정체성 함양 교육의 필요성과 한국어 교육의 실태에 대해 들어보았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에서 왜 이순신 글쓰기 공모전을 개최하게 됐나?
이승민: 1981년 재미한국학교협의회가 창립된 이래 최대의 과제와 고민은 우리 2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체성 교육은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하고, 한국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며 모국인 한국과 계속적인 연결고리를 갖게 하자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러한 정체성 교육을 위해 역사적 구심점으로 근현대적 위인인 김구 선생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을 내세웠는데 아무래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역사적 위인은 충무공만한 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해군 전략가로서의 이순신 장군을 넘어 그분의 효성과 인품, 탁월한 리더십, 애국과 애민의 정신, 역경을 헤쳐나간 범접할 수 없는 경지는 아이들에게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다가설 수 있기에 공모전을 열게 된 것이다.
-공모전이 당초 기대하던 것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나?
김명희: 미국 내 14개 지역협의회 학생들이 모두 참가했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다. 글쓰기는 웬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140명이나 참가했다. 대단한 성과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2세, 3세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짓기 대회는 비단 학생들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들까지 덩달아 이순신 장군에 대해 공부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학교 학생들이나 공모전 참가자들은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박은혜: 내가 가르치는 한국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이순신 장군에 대해 물어보면 “한글을 만든 사람” “보트(거북선)를 만든 사람”… 이런 정도로 대답한다. 부모님으로부터 거북선을 만든 분이란 말은 들어 봤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 공모전 참가자들은 따로 공부를 하기에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이순신 인성교육이 우리 2세들의 정체성 함양에 왜 중요한가?
김명희: 정체성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한글교육만이 아니라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예술, 가족관, 윤리관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인 면모보다 그분이 가진 한국인의 참된 얼과 정신을 가르치려 한다.
이승민: 모두가 차세대의 정체성 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으면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정체성 교육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왔고, 부모님은 어떻게 미국에 오셨는지, 한인 커뮤니티는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우리의 문화와 얼을 가르쳐 자신의 뿌리와 역사적 배경을 인지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1세들과 달리 마이너리티로 미국에서 태어났고 청소년기에는 정체성 혼란에 부닥치게 된다. 그걸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걸 극복할 힘을 길러주는 게 바로 정체성 교육의 핵심이다.
박은혜: 난중일기를 보면 장군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긴박한 전란 속에서도, 유배지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공경심을 보여준다. 그 바탕 위에서 유비무환의 정신과 민족애가 발현됐다고 본다. 난중일기를 읽은 아이들은 모두 그 효 사상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게 이순신 인성교육이 거두는 효과의 좋은 예다.
-이순신 인성교육을 한국학교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시하고 있나?
김명희: 역사시간에 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이순신 인성교육을 중점지도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박은혜: 이순신 자료가 광범위해 압축교육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순신 관련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써보게 하며 거북선 모형을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승민: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차원에서 전체 역사 중 이순신 장군에 중점을 두고 압축시킨 영상물이나 파워포인트 등을 제작 중이다. 이순신 교육을 교사 선택이 아니라 꼭 가르쳐야 할 필수주제로 권장하고 있다.
-이순신 공모전이나 교육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 아무래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크지 않나?
이승민: 공모전을 제대로 하려면 연 2-3만불이 든다. 예산 부족으로 시상식도 못했다. 아이들한테 떳떳하게 시상하고 긍지를 심어줘야 하는데 가슴 아프다. 동포사회가 우리 2세들의 미래를 위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명희: 많은 분들이 한국 정부에서 협의회나 각 한국학교에 큰 지원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지원은 있지만 각 학교 예산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교사들의 헌신과 학부모들의 열정으로 열악한 교육현실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현실이다. 한인사회의 미래를 위해 모두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주길 바랄 뿐이다.
박은혜: 우리는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미국에 왔다. 그러나 아이들에 가장 중요한 정체성 교육이 절망스런 현실에 부닥쳐 있다. 정체성 교육이 안 되면 한인사회는 사라진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겪을 혼란과 상처가 걱정된다. 한국어와 뿌리교육에 한인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정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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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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