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을 앞둔 199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각국마다 공항 대형화 경쟁이 불붙었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을 개항한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와 홍콩, 중국 상하이 등은 활주로와 여객터미널 확장을 통해 자국 국제공항을 동아시아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세계 항공기 시장에서 미국의 보잉에 밀려 만년 2위였던 에어버스는 아시아의 폭발적 성장을 주목했다. 에어버스가 이즈음 내놓은 야심작이 초대형 여객기 A380이다.
에어버스가 개발에 착수한 지 5년 만인 2005년 A380 시제품을 공개하자 세계가 주목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전면 2층 구조여서 수송력이 점보여객기 시대를 연 보잉 747시리즈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 최대 여객기로 국가원수 전용기로 활용된 B747-400이 일반석 기준으로 560명가량 태울 수 있었지만 A380은 800명 넘게 수용했다. 2층 전부를 비즈니스석으로 꾸며도 500명 정도 탑승할 수 있었다. 일등석에는 침대와 전용 라운지 바에 스파까지 갖춰 ‘하늘의 궁전’ ‘날아다니는 호텔’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했다. 예상대로 아시아부터 주문이 쏟아졌다.
2007년 첫 상업 비행은 고객 1호인 싱가포르항공의 차지였다. 최대 고객도 아랍에미리트항공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시차를 두고 주문했다. 세계적 부호인 사우디의 알왈리드 왕자는 B747을 전용기로 보유하고 있음에도 A380을 구매해 에어버스의 주가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주문이 끊기더니 지난주 에어버스가 2021년 인도분을 끝으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는 단종 발표를 했다. 개발 당시 최대 1,200대 이상 팔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첫 비행 이후 14년 동안 234대 판매에 그쳤다.
조기 퇴장의 이유가 뭘까. 덩치가 너무 컸다. 크면 클수록 경제성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A380은 승객을 다 채우지 못했다. 개발 당시엔 승객당 연료소비량이 747-400에 비해 20~30% 적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절반도 승객을 못 채우니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활용 가능한 공항도 제한적이었다. 반면 가격은 4억5,000만달러로 경쟁 모델에 비해 1억달러 더 비쌌다. 저가항공사 출연은 여객기 대형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A380의 비운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비싼 요금 때문에 취항 2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콩코드의 오류’를 연상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보잉의 747 시제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오른 지 50주년이 된다. 두 여객기의 엇갈린 운명이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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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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