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미국 자동차기업 크라이슬러의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가 뉴욕 도심에 259.4m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마천루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한창 잘 나가던 회사를 상징하는 멋진 사옥을 갖고 싶었던 월터 크라이슬러는 건축가 윌리엄 반 앨런과 의기투합해 맨해턴의 그랜드센트럴 역 인근에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등장했다. 맨해턴 은행이 260m의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밝힌 것이다.
크라이슬러 측은 고민 끝에 꾀를 하나 냈다. 빌딩 꼭대기에 38m짜리 첨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극비리에 진행된 첨탑 작전은 빌딩 높이를 319.4m로 만들었고 완공 시점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우뚝 서게 됐다.
1930년 선보인 크라이슬러 빌딩은 지상 77층, 지하 1층으로 지어진 뉴욕의 랜드마크다. 영화 ‘맨인블랙’ 3편, 스파이더맨, 아마겟돈 등에도 자주 등장했던 뾰족한 첨탑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 회사를 상징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아르데코 첨탑은 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처럼 생겼고 빌딩 내부에도 날개 달린 라디에이터 캡, 바퀴, 자동차 모양 등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공교롭게도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진 후 미국 경제는 10년간 이어진 대공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 최악의 불황을 겪는다는 ‘마천루의 저주’라는 신조어도 여기서 유래됐다. 건물주도 여러 번 바뀌었다. 월터 크라이슬러가 사망한 후 1953년 윌리엄 제켄도프라는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넘어갔고 1975년에는 매사추세츠 생명보험이 3,500만달러에 인수했다.
크라이슬러 빌딩의 주인이 11년 만에 바뀌었다는 소식이다.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공사(ADIC)가 지분의 90%를 미국 부동산 재벌 애비 로젠의 ‘RFR 홀딩’에 처분한 것이다. 매각대금은 1억5,000만달러로 인수가의 8억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땅의 임대료가 폭등한데다 보수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았다며 반긴다지만 건물 자체가 낡아 손볼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
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