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동쪽에 비와코라는 넓은 호수가 있다.
예로부터 교토·오사카에서 관동지역으로 가는 수상교통의 요지로 출발점에 오미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와 인접해 전국의 물산이 모이는 허브였다. 이곳 오미 상인들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근대 일본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유명하다.
도요타·이토추·마루베니 등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 창업자들을 배출했다. 한국으로 말하면 경남 의령·진주 정도 되는 셈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수습한 즈음인 1630년대 한 스님이 교토의 한 절에 책과 약을 파는 상점 후지야를 세웠다.
상점에 붙은 창업정신은 ‘정직하라, 베풀라, 깨끗하라’였다. 오미 출신으로 훗날 일본 3대 재벌이 되는 스미토모의 창업주 스미토모 마사토모(1585~1652년)다.
스미토모 가문은 이후 오사카로 본거지를 옮겨 구리제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며 에도 시대를 넘어 메이지 시대 초반까지 일본 제련 사업을 독점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스미토모 본사가 투자한 기업이 120개를 넘어설 정도였다.
미쓰이·미쓰비시와 더불어 일본 3대 재벌로 성장했다.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군 사령부는 재벌이 군국주의의 기초가 됐다는 이유로 지주회사를 없애고 지분을 분산시켜 해체했다. 하지만 연합군 점령이 종료된 후 재벌들은 옛 관련 기업 사장들의 모임을 발족하며 부활시켰다.
스미토모는 하쿠스이카이를 통해 결집했고 이 밑에는 현재 19개 기업이 있다. 미쓰이·미쓰비시 등 다른 재벌도 비슷했다. 상표관리와 경영위기 등에 공동대응할 정도로 협력하지만 소유는 분산된 전문기업 형태다.
전후 고도성장기에 대형 기업으로 성장한 소니·혼다 같은 대기업들은 일본에서 재벌이 아니라 큰손(大手企業)으로 불린다. 한국 국민들에게 스미토모는 일제 당시 광산에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일을 시킨 아픈 기억도 있다.
스미토모 계열로 일본 3대 메가뱅크의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일본 은행 업계 최초로 이르면 내년부터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린다고 한다. 고령의 직원들은 전문성을 감안해 인사 고과도 젊은 직원들과 다른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니 부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사회가 늙어간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씁쓸한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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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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