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일촉즉발 상황에서 대치하던 1972년 5월2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청산가리 캡슐을 양복 주머니에 품고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을 극비리에 만났다. 독약을 소지한 것은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자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부장은 박정희 정부의 ‘밀사’였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북특사였다. 당시 남북의 특사 교환과 막후 접촉은 통일의 기본원칙을 담은 ‘7·4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5년 장세동 안기부장은 특사로서 박철언 안기부장특보와 함께 방북해 김 주석을 면담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에는 박철언 정무1장관이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찾았다.
박 전 장관은 1985년부터 1991년까지 42차례나 북측과 비밀 회담을 가졌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서동권 안기부장을 특사로 평양에 보내기도 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특사 교환으로 남북 해빙 무드를 조성했으나 정상회담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 등으로 특사 교환과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합의했으나 1994년 7월 김 주석의 사망으로 모두 무산됐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3~4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에서 접촉해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해 5월 임동원 국정원장은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임 전 원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김일성 시신이 있는 금수산궁전을 참배해야 한다는 북측의 요구를 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특사 자격으로 김 위원장과 만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등을 설득했다. 2007년 8월에는 김만복 국정원장이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처음 공식 임명장을 받은 대북특사로서 방북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조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 5명의 대북특사단이 지난해 3월과 9월 두 차례 방북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다. 요즘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추진하면서 대북특사 파견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했으나 북한은 오히려 대남 비방 공세를 펴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에서 딴마음이 없다면 남북 정상이 특사 파견과 함께 ‘핫라인’으로 직접 소통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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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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