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삭으로 영업‘불신의 시선’ 회사 타격, 직원들 불안해 하기도, 산후조리 때도 복귀 서둘러
▶ 다른 직원 대체 못해 부담 자영업자 출산급여“늦었지만 다행” 정부 지원 떠나 사회적 응원 필요
교육서비스업체 A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1년 전에 비해 30% 이상 쪼그라들었다. 직원 수도 한때 4명까지 줄며 지난 2016년 법인 전환 이래 가장 적은 상황이다. 업황 탓은 아니었다. A사는 주로 학교나 기업·공공기관의 요청을 받아 청소년 대상 진로·직업체험을 제공하는데 최근 자유학기제 도입 등의 바람을 타고 일감은 충분했다. 결정적인 실적 부진의 이유는 바로 이 회사 창업자인 김윤경(38·가명) 대표가 지난해 6월 둘째를 낳았기 때문이다.
여느 교육서비스업체처럼 A사 역시 학사일정에 따라 계절별 부침이 심하다. 특히 1·4분기는 매출이 ‘0’을 기록한 해가 부지기수일 정도로 손가락을 빠는 시기다. 겨울방학인데다 새 학년 초에는 외부 위탁교육 수요가 거의 없어서다. 김 대표가 앞서 결혼이나 첫째 출산 등 개인적인 주요 일정을 연초에 맞췄던 것도 이 때문이다.
어수선한 3월이 지나고 완연한 봄을 맞으면 본격적으로 일감이 들어온다. 공공조달창구 ‘나라장터’에 올라오는 각 기관의 발주도 이때쯤 쏟아진다. 모내기를 잘해야 풍성한 수확이 뒤따르듯 A사의 한 해 농사도 이 시기가 하이라이트인데 회사로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대표의 ‘임신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열심히 영업을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가만히 앉아 있기조차 힘든 만삭의 몸으로는 도무지 일을 벌일 수 없었다. 경쟁 발표를 나가면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자신의 배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대놓고는 말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대표가 조만간 출산하고 애들을 챙기다 보면 과업을 잘 수행할지 못 미더웠던 셈인데, 김 대표 역시 자신의 상태를 되짚어보면 수긍이 갔다. 그렇게 입찰 사업들은 다 떠나가고 신규 영업은 위축되면서 매출이 뚝 떨어진 것이다. 김 대표는 “한가한 1월에 태어난 첫째와 달리 가장 바쁠 때 둘째가 나와 회사에 타격이 컸다”며 “직원들이 ‘출산 리스크’라 부르며 불안해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아이 둘을 낳는 동안 김 대표가 산후조리에 들인 시간은 모두 합쳐 채 한 달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조리원에 있는 동안 수시로 직원들과 통화하며 업무 진행상황을 챙겨야 했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나이 들어 고생한다는 주변의 걱정도 많았지만, 통상 대표의 역할 비중이 99% 이상을 차지하는 소기업을 유지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친구들이 아이를 낳은 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1~2년씩 쉬면서 아이와 시간을 갖는 게 참 부럽다”며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냈다.
그나마 김 대표는 어느 정도 사업이 자리를 잡은 데다 육아를 도와줄 양가 부모가 있어 여건이 나은 경우다. 창업 초기기업을 이끄는 여성 대표들은 ‘엄마’와 ‘일’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곧잘 직면한다.
대기업 중심의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정부는 창업에서 취업난의 새 돌파구를 발견하고 각종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젊은 여성이 창업할 경우에는 이처럼 기업 자체의 생존을 극복하는 ‘데스밸리’를 넘는 동시에 ‘출산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2018 여성기업 애로실태조사’를 보면 기업을 경영하며 양육을 한 기업인 339명 중 70명(20.6%)은 출산 전후에도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휴가를 쓴 73명 중 절반에 가까운 35명은 휴가일이 한 달 미만으로 일반 직장여성이 유급 출산휴가 3개월을 보장받는 점을 고려하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업무에 복귀했다. 조 대표는 “정부는 출산도 창업도 늘려야 한다고 외치는 데 여성기업인에게는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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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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