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 지도자들이 회담을 가진 크림반도 얄타의 리바디아 궁전.
일주일간의 공식 일정을 마친 연합국 지도자들과 각국 사절단은 합의를 자축하는 만찬을 가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이 앉은 테이블 중앙에는 흑해산 철갑상어·비프 마카로니 등 입맛 당기는 음식들이 올라왔다.
메인요리의 풍미를 더 해줄 와인도 놓였는데 유럽·미국산이 아닌 조지아산이었다. 스탈린이 반주용으로 추천한 것이다. 조지아 출신으로 고향산 와인 마니아로 알려진 그다운 선택이었다.
스탈린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도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보다 조지아 와인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만큼 구소련 등 동구권에서는 조지아산을 최고 와인으로 꼽았다는 얘기다. 조지아 와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현지 유적에서 나온 포도 씨앗은 8,000년 전 것으로, 이때 이미 꺾꽂이로 포도나무 번식을 한 흔적도 나타났다. 오랜 역사를 입증하듯 조지아에서 확인된 포도품종만 520종이 넘을 정도다.
와인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비노(vino)’도 조지아어 ‘그비노(ghvino)’에서 왔다고 하니 ‘와인의 요람’으로 불릴 만하다.
이렇게 조지아가 와인 종주국이 된 배경에는 이상적인 기후가 있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흘러온 미네랄이 풍부한 물과 흑해 연안의 알맞은 습도는 포도 재배에 최적이다.
이 덕분에 조지아에서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바닥이 뾰족한 토기(크베브리)를 이용해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 토기를 땅에 묻고 밀봉하는 양조방식은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현재 생산량은 연간 1,500억ℓ에 달하는데 많은 양이 러시아 등으로 수출된다.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조지아 와인의 러시아 수출길이 막힐 위기라는 소식이다.
대규모 반러 시위 와중에 민영방송 TV 진행자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악취를 풍기는 점령자”라고 막말을 하자 러시아가 발끈한 것.
조지아 직항 항공편 중단 조치에 이어 러시아 의회가 와인·광천수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추가제재안을 의결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푸틴이 의회의 추가제재 강행 주장에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며 유화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나라 간 갈등을 감정적으로 풀려고 하면 누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푸틴은 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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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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