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는 1982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감 생활을 하던 당시 서울 시내 안가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독대했다.
이 여사는 이 자리에서 남편인 김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다음 달 무기수에서 20년 징역으로 감형됐을 뿐이어서 이 여사는 몹시 실망했다.
1990년 4월 당시 김영삼(YS) 민자당 대표는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독대해서 노랑봉투를 집어던졌다. 봉투에는 안기부가 만든 ‘YS 길들이기’ 문건이 들어 있었다. YS는 “이런 식으로 공작해? 나 (대통령) 안 해도 좋아, 세상에 공개할 거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여권의 차기 대권 경쟁에서 YS가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됐다.
본래 독대(獨對)는 왕조 국가에서 관리 등이 혼자 임금을 만나 정치에 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을 뜻한다.
조선시대 ‘문종실록’에는 성삼문이 옛날 임금의 ‘독대’ 사례를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왕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있어서 임금과의 독대 사례는 드물었다.
그중에서도 서인과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효종과 파격적으로 단둘이 만나 북벌(北伐)을 논의한 ‘기해 독대’는 유명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권력자와의 독대는 권력을 상징한다. 왕이나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 실세로 통했다.
한국의 다수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나 정보기관장, 장관, 정치인, 재벌 총수 등과 독대해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 만나고 거액의 정치자금을 거둬 나중에 처벌을 받았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독대 관행은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줄어들기 시작해 노무현 정부 때 거의 없어졌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재벌 총수 독대가 박근혜 정부에서 되살아나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는 밀실 정치 폐해를 없앤다면서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폐지하고 참모·장관들과의 독대도 가급적 제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위 인사를 만날 때 부속실장 등을 배석시켰다.
문재인 정부도 ‘독대 제한’ 원칙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5당 대표와 회동을 마친 뒤 1분30초 동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독대해 눈길을 끌었다. 소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다수 회동이든 독대든 자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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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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