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주식거래 2009년 수준 밑돌고 성장성·유동성 고갈에 활력잃어
▶ 세제·인센티브 등 제도 개편하고 신산업 발굴해 투자매력 높여야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휘몰아치자 국내 증시는 패닉에 휩싸였다. 투자자들은 매물을 쏟아내기 급급했고 시장에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새 한국 증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조선업이 이끌고 자동차가 뒤에서 밀었다.
한국 제조업의 강한 펀더멘털이 돋보인다는 찬사가 쏟아졌고 무기력했던 일본을 따돌렸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코스피지수는 2010년 말 2,000선 돌파 축포를 터뜨린 이후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수준을 맴돌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은 말할 나위도 없다. 주식거래를 따져도 유가증권시장에서 올 들어 일평균 4억5,000만주에 머물러 2009년 4억8,000만주를 밑돌고 있다. 시장이 활력을 잃었다는 한탄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이 몇년째 보유하던 그룹주 펀드를 남김없이 처분하고 해외주식펀드로 갈아탔다고 전했다. 수익률이 줄곧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해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운용사에서 매번 보내오는 보고서에 담긴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구도 지겨웠다고 했다.
주위에 해외주식에 투자했다는 이들이 부쩍 많아지긴 했다. 우리 증시에서 마땅히 살 만한 종목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시장이 워낙 맥을 못 추니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른다. 이러니 국내 시장을 놓고 글로벌 왕따니 박스권 증시라는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우리 경제 규모는 계속 커졌고 세계 경제도 좋다는데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은 어떤가. 미국 증시는 2008년 이후 10년째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다. 2009년 7월 시작된 경기확대 국면은 전후 최장기간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과거와 달리 한미 증시 간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10년 새 우리 경제는 몇배 성장했는데 시장은 왜 이렇게 맥을 못 추는지 의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얘기가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증시란 한달 두달이 아니라 10~2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주가는 미래수익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스스로 강점을 키우고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시장의 평가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기업 이익이 미래 성장으로 이어지고 신성장 산업이 탄생한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헤치고 우버·에어비엔비 같은 유니콘 기업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형 우버’를 놓고 사회적 공방을 벌이는 처지다.
10년째 반도체·자동차로 대표되는 구태의연한 산업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미래가치 투자를 운운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와 달리 중국에서는 요즘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이 등장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국에 맞서 독자적인 기술 벤처기업을 키우겠다며 적자회사에도 과감히 자본 조달의 길을 터줬다.
초기에는 주가 제한폭도 없어 일반인의 투자위험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벤처시장에는 몸을 사린 채 안정적인 금리상품에 고객이 구름처럼 몰리는 우리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우리 자본시장을 살리자면 경제주체 모두가 한국 경제의 미래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뛰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관되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그러자면 정부가 자본시장을 홀대한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일반인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거 외환위기 직전 도이치증권의 스티브 마빈은 ‘한국에 제2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흔히 자본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라고 한다. 한국 경제의 투자 매력을 높일 수 있는 미래성장산업이 속속 탄생해 우리 자본시장의 도약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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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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