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서 ‘염소 뿔도 녹인다’는 절기 대서(大暑) 며칠 전까지 100도를 육박하던 미 동부의 폭염이 이번 주부터 한풀 꺾여서 다행이다. 한국과 비슷한 기온의 사계절이 있는 워싱턴 지역에 30년 가까이 살아 보니 한국의 24절기가 여기서도 잘 맞아서 옛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이 나온다. 아마도 지금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하늘과 땅의 소리에 마음과 귀를 열어서 얻은 통찰이 아닐까 싶다.
나의 스승이며 멘토인 자연에게 배우는 교훈 중 하나가 ‘생로병사’ (生老病死)의 이치다.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다가오는 인생의 사계절을 우리는 피해갈 수도, 사양할 수도 없다. 태어남(生)이 과거완료형이라면 늙어감(老)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달이면 어김없이 솟아나는 흰머리를 염색하고 주름 방지 로션을 열심히 발라보지만, 몇 년 전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앳되어 보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서서히 경험하던 젊음의 상실(loss of youth)이 때론 슬프게 다가오지만, 오늘이 살아있는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인 것을 알기에 카메라 앞에 다시 환한 웃음을 지어 본다. 꽃을 잃음으로 열매가 맺히고, 낙엽이 다시 그 나무를 성장시키는 거름이 되는 이치를 자연이 내게 알려주었다.
젊음의 상실인 생로(生老)보다 더 아프고 힘든 것은 ‘병(病) 사(死)’인 것 같다. 작년 겨울에는 유달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애도 상담’이 많았다. 30세를 갓 넘긴 아들, 40중반의 남편, 50세 엄마를 사고나 질병으로 잃은 내담자들을 회색 빛 겨울에 만나, 그들의 복받치는 슬픔과 고통의 죄책감을 고스란히 안아주는 일은 훈련 받은 상담사에게도 큰 힘과 지지가 필요한 시간이 였다.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인 상실과 애도에 관해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면 낙엽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이나 음산한 흑백의 겨울보다는 초록빛 싱그러움이 대지를 덮은 여름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8월 둘째 주부터 ‘상실 수업’책을 가지고 세번째 ‘북Talk’를 진행한다.
‘인생수업’의 저자이며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로-로스는 죽음을 맞이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남겨진 가족들을 인터뷰했다. 또한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실 수업’을 글과 삶으로 보여주면서 떠났다. 그녀는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마라.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우리가 감당 못할 만큼 신은 가혹하지 않았다는 것, 절망 속에서 속히 빠져나오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됐을 때 느껴지는 분노와 통곡과 원망, 그 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을 제발 부인하기 말고 100퍼센트 드러내 놓아라”고 부탁한다.
한 사람을 삼켜버린 이별의 슬픔과 고통을 대면하는 작업, 그리고 다가올 상실을 미리 준비하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46세의 엄마를 잃은 여고생이 20년 후에 상담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33년전 세상을 떠난 엄마를 ‘이제 안녕…’ 인사하며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상실이란 꼭 사별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실연, 이별, 이혼 등으로 인한 관계의 깨짐, 또는 실직이나 퇴직을 통한 역할의 상실도 비슷한 애도 과정이 필요하다.
참석을 망설이는 어느 지인에게 ‘영정사진 찍으러 가는 기분이라 썩 내키지는 않지만 피하기 보다는 체계적인 지식을 가져 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냈는지 느껴졌다. 8월 둘째주부터 4주 동안 목요일 저녁과 금요일 오전에 2시간씩 진행되며, 10명으로 제한하기에 사전 등록이 꼭 필요하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경험한다면, 도움이 되는 책이나 전문가와의 애도 상담 등을 통해 이미 떠난 그 사람을 진짜 떠나 보내는 작업의 첫 발을 떼는 작은 용기를 간절히 구한다.
4monica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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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상담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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