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등으로 혼란스러운 중에도 70편 가까운 ‘읽을거리’가 생겨나 눈앞에 펼쳐졌다. 그중 다수는 특히 소재 면에서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 주었다. 이민의 역사와 풍속을 증언하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모국에서 성장해 미국으로 이민 와 살아온 인생사를 조리 있게 서술한 글로 일정한 수준에 오른 것도 여러 편 있었다. 어떤 글은 넓은 의미의 수필이라 할 수는 있겠는데, 이런 공모전에서 바라는 문학장르로서의 수필 범주에서 벗어나는 수기 형식도 있었다. 아무튼 심사 대상이 된 글을 거의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게 된 것은 상당한 행운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문학작품으로서의 품격이 느껴지는 단계에 이른 수필을 짚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개는 체험을 전달한다는 차원에 그쳐서였다. 겪어온 일을 구체적으로 서술해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에서 얻는 인생론적 성찰을 반영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수필은 바로 그런 단계에까지 나아가는 장르인 건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 예가 많았다. 이 기회에 나름대로 심사 기준으로 삼은 것을 세 가지만 적어보면 이렇다.
첫째,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글의 주요 요소로 삼을 만한 가치를 찾아내고 있는가.
둘째, 일관된 시선을 유지하면서 다채로운 표현, 정확한 어법 등으로 서술하고 있는가.
셋째, 소재의 드러냄, 표현의 유려함 등이 궁극적으로 주체 창출에 가닿는가.
이번 응모작에서 이런 면을 너끈히 충족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지만, 그래도 함께 논의할 대상은 여러 편이었다. ‘어느날’(이시은), ‘낮손님’(신재동), ‘가출을 꿈꾸며’(박하영)가 마지막으로 남은 3편이었다. ‘어느날’은 팬데믹 이후 휴스턴에 찾아든 한파와 그에 따른 재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큰 재앙을 몰고 올지 모를 ‘지구 온난화’ 문제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재난 현장경험의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드러나 공감을 준다.
‘낮손님’은 운동 나간 사이 집에 든 도적 ‘낮손님’에 대한 체험을 눈에 선하게 그려준다. 보석금을 낸 출소자로서 다시 절도죄를 저지른 범인을 용서하는 과정이 돋보인다. ‘가출을 꿈꾸며’는 성탄절을 맞아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다시 방을 내주고 가출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들이 데려온 경비견의 허물없는 행동에 놀라는 장면이나, 치밀하게 준비한 가출을 포기하는 하는 반전의 결말이 재미를 안겨준다.
세 편 모두 좋은 글감을 지니고 있었고 구체성이나 재미라는 면에서 여느 때에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가출을 꿈꾸며’는 그 체험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낮손님’은 범인에 대한 용서가 개인적 차원의 결단으로 이해된다는 아쉬움이 생겨났다. ‘어느날’은 환경문제라는 공공의 관심사가 ‘일반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약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어느날’에는 개인의 체험이 구체적으로 잘 녹아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쌓인 역사적 맥락과 관련해 사회적 의미로까지 확대되는 힘이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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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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