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증 앓던 흑인 여학생 티체노르 자살 파문
▶ 학교서 ‘검둥이’ 욕설… 교장 상담에도 개선 없어
누구라도 도와 달라고 외쳤을 때 아무도 그를 위해 나서지 않았어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 때까지 온종일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요.”
지난달 6일 유타주 솔트레익시티 인근 드레이퍼의 자기 집에서 자폐증이 있던 열 살 흑인 소녀 이사벨라 잇지 티체노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마 브리트니 티체노르 콕스(31)는 학교와 교육청이 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미 AP통신 인터뷰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흑인, 장애인, 여학생’이라는 약자로서 고통과 싸워 온 10대 소녀가 인종차별과 장애인 학대 끝에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학교 다니는 걸 즐기던 딸 티체노르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가을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였다. 아침 등교 전 티체노르는 느닷없이 집에서 자신의 몸에 방향제를 뿌렸다. 한 남학생이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놀렸다는 것이다. ‘검둥이’ 같은 인종차별 용어도 난무했다고 엄마는 주장했다. 게다가 티체노르는 자폐증 때문에 언어 구사력도 부족해 더 어려움을 겪었다.
부모는 딸이 학교 생활을 괴로워한다고 지난 9월부터 느꼈다. 급기야 불만을 털어놓기 위해 교사를 찾아갔지만 상황 개선은 없었다. 교장, 교감을 만난 뒤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딸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떠안아야 했다.
티체노르가 다니던 반에서 흑인 학생은 그가 유일했다. CNN은 이 지역 데이비스 학군 학생 7만3,000명 중 흑인과 아시아계는 1%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인종 편중이 심한 지역이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공개된 연방 법무부 조사 결과 이 지역 학교에서는 심각한 인종차별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데이비스 학군에 있는 흑인과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이 수년간 괴롭힘을 당했고, 관계자들은 의도적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을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흑인 학생들에게 원숭이 소리를 지르고, “솜을 따러 가라” “너는 나의 노예다” 같은 인종차별 발언이 쏟아졌다는 보고에다 추가 조사도 진행 중이었다.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유타주의 경우 2019년 0~17세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30명에서 지난해 4.08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10~17세 청소년 자살률은 8.85명에 달했다. 숨진 티체노르의 정신건강이 악화하기 전 학교와 지역사회가 가정과 함께 이를 막아 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딸 티체노르의 장래 희망은 댄서였다고 한다. 엄마 티체노르는 AP에 “분노가 유일한 메시지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며 “따돌림, 인종차별, 자폐증 이해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 다른 부모들은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게 딸의 일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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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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