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구 초입에 접어드니 친구들이 여기저기에서 지뢰를 밟듯 저 세상으로 떠나 착잡하던 중 오늘 아드님으로 부터 대선배님의 부음을 접하니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합니다.
선배님은 따뜻하며 참 멋있으신 분으로 저희 부부 머리와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으십니다. 모든 분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던 고인이셨지만 집사람의 사범대 선배이시기도 해서 남달리 우리 후배 부부를 잘 대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오래 거슬러 올라가 사모님께서 구존(俱存)해 계실 때 자주 뵙고 교유했었던 생각이 나고 사모님 마지막 생존 몇 달 동안 소생의 졸문들 중 특히 ‘한국 여행기’를 열심히 읽으시고 좋아하셨다는 말씀으로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사려 깊으시고 멋있는 두 분이셨지요.
개성에서 피난, 월남하신 후 6.25 난리통에도 피천득 교수 문하에서 학구(사대 영문학과 사회학 복수전공)에 심취함은 물론 재학 중 미국 국방부 산하 일간 군사 전문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 1951-1953) 영어 신문기자로도 활약하시며 발군의 영어실력으로 참혹했던 민족 비극의 현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필사의 노력과 함께 지성인의 고뇌를 젊은 시절에 이미 겪으셨습니다.
희생된 영령들을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치라는 말씀도 하신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 젊은 인생의 대부분을 교직생활로 보내시고 1967년 워싱턴 D.C.에 정착, 문학활동과 기독교 윤리실천운동 등을 활발히 하시며 말년에는 아름다운 ‘윤동주 영역시선’을 출판과 동시에 미국 의회 도서관 영구 소장도서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뿐만 아니라 김소월, 노천명, 박목월, 박두진, 김광섭 시인 등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대표작 26편의 영역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소생에게도 속달우편으로 141page의 아기자기한 고귀한 시집을 보내주셨지요.
민병희 인하대 영문학 명예교수님(작가의 영역은 탁월하고 흠이 없는 완벽에 가깝다)이나 고 최연홍 시인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나 시인이 될 수도 있는 것도 아니며 하기에 모국어인 한글로의 시적표현도 어렵거늘 그 섬세한 시인의 감정과 표현하고자하는 진정한 뜻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외국어인 영어로 원작자의 시상(詩想)을 옮길 수 있을까 하는 데 이르러서는 변 선배님의 해박하신 문학적 섬세함과 영문 번역 능력은 감히 독보적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윤동주 연구에 몇 안 되는 분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시 문화를 영미권 서방세계에 알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아마도(영어에서 흔히 말하는 IF라는 말)라는 말을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한다면, 평화로운 좋은 시절,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셨더라면, 고인의 모든 자질을 감안해 보았을 때 아마도 낭만적인 세계적 대문호가 탄생되었을 지도 모르지! 하며 잠시 생각해 보았답니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 땅에서 삭막하게 앞만 보고 처절히 살아온 우리들 보통 이민자들에게 그나마 영혼의 양식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떠나신 따뜻하며 멋진, 아주 멋진 선각자이신 대선배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주님의 따뜻하신 품안에 그를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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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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