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모래알은 햇볕에 반짝이지만 바람이 차다. 파도는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하얀 투구를 쓰고 돌진하여 밀려온다. 수 많은 갈매기 떼가 날개를 접고 파란 바다를 향해 모여있다. 주황색 부리와 검정색 눈꼬리를 무섭게 치켜 뜬 다른 갈매기 떼가 줄지어서서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려 나와 눈을 맞춘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사열에 미소로 답했다. 바로 그 옆에 한 쌍의 비둘기가 여유롭게 산책하고있다.
파도 가까이 바닷가에 비둘기가 노닌다? 자세히 살펴보니 검푸른 몸통 깃털에 머리에서 어깨까지 보라색, 파란색으로 반짝반짝 윤이 난다. 고운 빛이나는 젊은 한 쌍의 비둘기가 그들의 무리를 떠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왔을까?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거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하와이 같은 곳으로 신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신혼여행 왔나? 돌아올 때 다시 보게 되면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보내 주어야겠다.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는 친근감을 주는 새다. 영리하고 귀소 본능이 있으며 길 찾기에 능숙하고 장거리에도 지치지 않고 잘 나는 지구력이 있다. 그래서 창세기 때와 제 1차 세계대전 때에 통신병 역할을 했다. 이제는 누구나 셀폰이 있고 전시에는 무전을 쓰니 편지를 전하기 위해 비둘기를 이용할 필요가 없지만, 이번 발런타인데이에 AI가 아닌 비둘기가 물어다 주는 연서를 받아 본다면 얼마나 로맨틱할까? 엘에이 근교에 난 산불재해로 힘들어하는 곳에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마스크를 쓰지않고 갈 수 있는 비둘기가 전해주어도 좋겠다는 몽상을 해본다.
자연상태의 비둘기는 1년에 1-2회 짝짓기를 하며 번식력이 좋지만 먹을 것이 없으면 번식을 멈춘다. 사랑하고 싶을 때, 짝을 구 할 땐 자리잡고 앉아서 ‘구구-국-국 국’ 노래한다.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온다. 서양에서는 이 날을 새들이 교미하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새들의 발런테인데이다. 사람도 연인에게 달콤한 초콜릿 등을 선물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 결혼전인 연인들은 물론이고 부부간에도 이런 날을 핑계 삼아 정성을 담은 선물을 주고 받는다면 팍팍한 삶에 윤활유가 될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어머니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날마다 발런타인데이가 되어 바닷가에 나온 비둘기 한쌍처럼 순수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 수는 없을까? 주위 사람에게 과시하기위해 여러명이 함께 일하는 직장에 큰 꽃바구니나 사람만한 곰 인형을 보내어 일터를 비좁고 불편하게 만드는것 보다, 둘만이 있는 곳에서 촉촉한 정을 담은 글이나 장미 한 송이로 서로를 감동시키면 좋을텐데…
파도는 작고 하얀 꽃잎을 내 발등에 남기고 떠난다. 점심 후 커피잔을 들고 나온 머리가 하얀 커플이 손을 마주 잡고 걷는 모습이 정다운 한 쌍의 미둘기 같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었던 그 아름다운 비둘기 한 쌍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기념사진을 남겨 줄 수 없어서 서운하다.
지금쯤 그들도 보금자리로 돌아가 “Happy Valentine Day!” 축배를 들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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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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