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운 문양목 애국지사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후 미국으로 건너와 항일민족운동을 펼쳤다. 1907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동보국회 창립에 참여하고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대동보국회의 기관지인 대동공보의 주필을 맡아 한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특히 고종 황제의 외부고문이었던 친일파 더럼 스티븐슨이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크로니클 등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접하고 직접 스티븐스를 찾아가 항의했다. 이후 더럼 스티븐스의 저격에 나선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 이후 체포된 두 의사를 위해 변호비용을 모금하고 두 의사의 의거 정당성을 널리 알리는 등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대동보국회가 대한인국민회로 통합된 후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당선돼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에 앞장섰으며 군인 양성운동도 적극 펼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0년 12월 25일 71세로 별세, 맨티카의 묘지에 잠들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문양묵 지사의 활동을 높이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2023년 시작된 문 지사의 귀환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독립된 대한민국으로 유해봉환을 하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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