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적한 느낌이 스며든 조용한 오후다. 무심코 내다 본 정원 나뭇가지가 빗방울에 흔들린다. 마치 무엇인가 찾는 내 마음처럼! 이 순간 뜬 구름처럼 스쳐가는 부산항 갈매기 그리고 통통연락선$. 아 가슴 저리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부산 갈매기’가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근 70여년 전 6.25 전쟁 후 학창시절 충격적인 깊은 사연에 잠긴 채 몇날 몇일을 방황하던 부산항 거리 빗줄기 태풍,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판잣집 골목길이 내 모습에 잠긴다.
1951년 1.4후퇴 후 자리잡은 초량 판잣집 진흙탕 골목길! 나도 모르는 사이 뜨거운 눈물 방울이 코 밑을 적신다. “왜 이리도 갑자기” 하며 바라본 창밖 멀리 술렁이는 부산항 파도에 스쳐가는 그 아련한 한 폭의 옛 추억! 그 아름다운 추억에는 무지한 고생과 낭만 그리고 지극히 사랑한 가족과 벗들과의 이별은 물론, 연인과의 애처로운 풋 사랑이 담겨있기에 쓰라린 가슴을 움켜쥔다.
그 아름다운 활기찬 시절을 돌아볼 때 부산항은 나의 제2 고향이었다. 치열한 살상 6.25 전쟁 당시 부산부두에 위치한 미8군 본부 통신대 카투사 통역관 복무시절에 겪은 비통한 경험을 비롯한 초량 달동네 판잣집은 절망을 자아냈다.
또한, 사나이의 갈망적 풋 사랑을 걸머쥔 추억과 초량 산정호수에 비친 보름 달은 유학길에 오른 나의 여린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든 부산항 작별은 지난 70여년 끊을 수 없는 나의 맥박이다.
당시 “도떼기 시장” 이라 불린 “깡통 국제시장은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온 군용물자와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갓 잡동사니 물품들이 시끌벅적한 사람들 과 섞여 뜨네기 장사꾼들의 장터였다. 한편 아름다운 포목상을 비롯, 인정많은 부산 주민들의 포근한 온정과 푸짐한 인심의 숨터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잊지못할 발길은 펄펄 끓는 용광로 ‘꿀꿀이 죽’. 이는 ‘유엔 탕’이라고도 불린 비참한 한국전쟁의 쓰라린 자화상이었다. 그러나 피바다로 엉킨 전쟁속에서 배 창자가 끊어질듯 굶주리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허겁지겁 퍼먹는 그 ‘유엔 탕 꿀꿀이 죽’이야말로 억만장자 열이 먹다 아홉이 사라져도 끄떡없는 일미였다.
아, 그 시절 고된 피난살이를 달래준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저녁 어두컴컴 노을이 지면 새벽부터 등꼴 빠져라 허덕인 지개꾼들은 생선 한토막 새끼줄에 묶은 채 처자식 먹이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아련한 모습은 까마득한 7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내가슴에 못 박힌 듯 아직도 뭉클하다.
그 생선 토막 한쪽을 반기는 온 식구들의 눈물겨운 웃음소리는 하루 종일 땡볕에 찌들은 애비 가슴을 살며시 녹여 줬으리라.
아, 그 시절 그 낭만 한번 다시 불끈 쥐어봤으면$. 꿈에서라도 “펄펄 꿀꿀죽이려”라 외친 벽력같은 아저씨 아낙네들의 그 정취 어이 잊으리! 그런 시절 역사의 우리 대한민국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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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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