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호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한 말이 있다.
“곧 75주년이 되는 한국전쟁에서 호주 군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싸웠다”이다. 외국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일을 먼저 꺼내들었다. 6.25 전쟁 당시 호주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 중 하나이다.
총 1만7,164명의 병력을 파병하여 육해공군 모두 전투에 참여했고 이 중 339명이 전사하고 1,216명이 부상을 입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사흘 후인 6월28일 유엔 안보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참전을 촉구하는 유엔결의안을 채택했고 회원국 및 국제기구들이 각종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1951년 6월까지 총 16개국의 군인들이 파견되었다. 북미 2개국(미국, 캐나다), 남미 1개국(콜럼비아), 아시아 4개국(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아프리카 2개국(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유럽 7개국(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크, 네덜란드, 터키)이다.
그 외 6개국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태리, 서독은 의료지원단을 파병하여 병원, 병원선, 의사, 간호사 등 의료 및 물품으로 도왔다. 이 중에서 스웨덴은 부산에 살던 시절 우리집과도 인연이 있다.
스웨덴은 21개 참전국 중 가장 최초로 의료진을 파견한다고 안보리에 통고했고 1950년 9월23일~1953년 7월27일까지 부산시 부산진구 부산상고에서 야전병원을 열었다. 200병상 규모의 스웨덴적십자야전병원은 전쟁기간동안 병상 규모가 400개까지 늘어났다.
의료지원국 6개국 중 가장 많은 인력을 지원, 연인원 1,124명을 파견했고 휴전이 되어 야전병원단 본대는 철수했지만 민간인 의료팀은 한국에 남아 200만 명 이상을 치료했다.
당시 부산상고 영어교사인 아버지는 통역을 맡아서 병원에서 일했다. 날씬하고 젊은 아버지가 스웨덴 군인들이 쓰는 돛단배 스타일의 군모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이 기억난다.
그리고 언니는 우리집에 온 그들을 기억했다. 물론 나는 생겨나기도 전 일이었다. 우리집에서 돌잔치가 열린 날, 스웨덴 의료진들이 몰려와 불고기, 잡채 등의 한국 음식을 먹느라고 방마다, 마루 가득, 마당에 자리까지 깔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웃고 떠들었다고 한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온 네댓살 짜리 언니가 집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 서있자 마당 끝에 앉은 군인이 번쩍 들어 안아서 옆으로 계속 전달하여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한 달 전, 롱아일랜드 사는 부부가 집으로 점심 초대를 했었다. 남편은 스웨덴 사람이고 부인은 한국 사람이다. 마침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스웨덴에서 좋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내주어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이 60이 넘어서, 70이 넘어서도 새벽부터 AFKN 방송을 들었다. 열린 방문에 마루를 지나 내 방까지 왕왕 소리가 울리면 잠이 덜 깬 나는 “아버지, 시끄러워요, 소리 좀 줄여요”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곤 했었다. 그 아버지가 인사를 온 사윗감에게 처음 한 말이 “퍼스트 임프레션(First Impression)이 좋군”이었다. 70 넘은 할아버지가 대뜸 이 말을. 그것도 일본어 억양이 있는 영어로.
지난 여름 부산에 가보니 스웨덴 야전병원이 차려졌던 부산상고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롯데백화점이 들어서 있었다.
또한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UN 기념비가 있어 매년 5월29일이면 6.25 기념행사를 한다고 한다.
90대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참배를 한다는데, 스웨덴에 가면 그들을 만나고 싶다. 당시 소년 의무병이거나 어린 간호사가 생존해 있다면 통역해주던 교사를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부질없지만, ‘그래, 그 부부 참 의가 좋았지’ 내지는 ‘그때 먹은 한국 음식맛을 잊을 수가 없어’ 하는, 그러한, 하나마나 들으나마나 한 말을 들어서 뭐 하겠냐마는. 또 그 기억이 맞는지, 윤색된 것인지. 상상인지, 아무런 영양가도 없겠지만서도…
그래도 오래전 부모의 흔적이라면 지푸라기조차 잡고 싶은 것은 바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이렸다. 결국은 육친에의 그리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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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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