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반성과 교훈 새겨야”
▶ 아베 이전 수위⋯ ‘침략·가해’는 빠져
▶ 평소 소신·한일 회담 앞 성의 표시
▶ 차기 총리 후보들 야스쿠니 참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3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패전일 전몰자 추도사에서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오전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간 상생 협력의 길을 모색하자"고 한 데 대해 화답한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같은 날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한 일본 정치인들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앞다퉈 참배하면서 일본 정부가 앞으로도 반성의 뜻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15일 도쿄 무도관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낭독한 추도사를 통해 "전쟁의 참화를 결단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그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이제 다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가 패전일 추도사에서 반성을 언급한 건 2012년 이후 13년 만이다. 마침 이 대통령은 앞서 이날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 정부가 과거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주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이시바 총리가 이 대통령의 '기대'에 답신을 보낸 셈이 됐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오는 23일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정상이 서로 관계 강화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전 일본 총리들은 패전일에 반성의 뜻을 표명해 왔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총리가 처음 아시아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언급했고,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는 "깊은 반성과 함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현 입헌민주당) 정부였던 2012년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 때까지 이런 표현은 계승됐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가 재집권한 뒤 2013년 패전일부터 '반성'이란 표현이 사라졌다. 이후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도 이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전쟁을 다시는 일으키지 않겠다는 '부전(不戰)의 맹세'라는 표현도 13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이 표현은 아베 전 총리가 재집권하면서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순화됐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원래 표현을 다시 사용해 '전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추도사 변화는 이시바 총리의 소신을 드러낸다. 그는 평소 제국주의 일본이 문민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비판적 견해를 보여왔다. 부친인 이시바 지로 전 돗토리현 지사의 뜻에 따라 일본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종전(終戰) 대신 패전(敗戰)을 써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으려면 태평양전쟁에 대한 반성이 필수적이라는 총리 생각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등 식민 지배를 당한 이웃 나라를 반성 대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또 과거 총리들이 반성과 함께 쓴 ‘침략’과 ‘가해’란 표현도 쓰지 않았다. 아사히는 “가해 책임은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쟁에 대한 반성 표현을 부활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13년 만의 ‘반성’ 표현 부활에도 이날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들은 야스쿠니신사에 잇따라 참배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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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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