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바그너의 작품만을 연주하기 위헤 설계된 성역, 축제극장(바이로이트).
서문- 음악보다 더 깊은 침묵을 따라
우리가 걷는 길에는 소리가 없다. 그러나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의 삶이 들려온다. 리하르트 바그너. 나는 그의 음악이 아닌, 그의 삶이 지나간 길을 따라 드레스덴과 바이로이트를 걸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음악은 더 이상 악보가 아니라 인간의 고뇌와 꿈으로 들려왔다.
드레스덴- 음악과 혁명의 무대
엘베 강은 조용히 흐르지만, 바그너에게 드레스덴은 결코 조용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리엔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를 작곡하며 음악과 무대, 시각예술을 하나로 엮는 새로운 오페라의 문을 열었다. 1849년, 시민 봉기에 바그너는 거리로 나섰다. 예술가는 혁명가가 되었고, 결국 망명자가 되었다. 그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바로크 예술의 정수인 츠빙거 궁전, 엘베 강변의 브륄의 테라스, 오페라 하우스 앞의 대성당, 루터 동상 너머 우뚝 선 성모성당. 바그너는 이 거리들을 걸으며, 드레스덴이 품은 고요한 품격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교회의 종소리보다, 인간의 고통과 구원이라는 더 깊은 물음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바이로이트- 이상이 건축된 신전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바그너가 ‘듣는 이’를 위해 직접 설계한 공간이다. 무대 아래에 숨겨진 오케스트라, 관객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악기들, 그리고 오직 경청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된 객석. 모든 것이 그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오페라를 시작하기 전, 객석의 모든 불을 끄기 시작한 것도 바로 바그너였다. 관객은 오직 오페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관객은 모두 열광했고, 이때부터 모든 오페라는 시작 전에 객석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유럽 전역의 오페라하우스와 극장에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무대 예술의 표준이 되었다. 그 꿈을 현실로 가능하게 해준 이는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였다. 1876년, 《니벨룽의 반지》 전곡이 이 무대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졌을 때, 청중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신화적 인간 서사를 마주했다. 관람이 아닌 체험, 오락이 아닌 의식(儀式). 그것이 바로 바이로이트였다.
이 도시에 또 하나의 무대가 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마르크그라프 오페라극장. 영화 《파리넬리》에도 등장한 이곳은 금박과 목조 장식이 어우러진 바로크 예술의 정수다. 바그너의 음악과 결은 다르지만, 이 도시가 오래전부터 ‘음악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도 바이로이트에는 바그너가 마지막을 보낸 반프리트 하우스가 있다. 정원 한켠, 아내 코지마와 나란히 묻힌 그의 묘 위로 바람이 지난다. 그 바람조차 레퀴엠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다.
코지마- 침묵으로 지켜낸 사랑
코지마는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자, 지휘자 한스 폰 뵐로의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는 바그너를 사랑했고, 결국 그의 곁에 남았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바이로이트 축제를 홀로 지켜냈다. 직접 지휘를 맡고 재정도 책임지며, 남편이 남긴 무대를 현실로 이어갔다. 그녀의 헌신 덕분에 아들 지크프리트로 이어진 이 축제는 오늘날까지 ‘바그너의 성지’로 남아 있다.
불완전함 너머의 선율
바그너의 삶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의 혐오와 편견은 시대의 상처였고, 그의 음악은 한때 폭력의 깃발 아래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길 위에서, 그 어두운 면만을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고통과, 그 고통을 넘어 빛으로 나아가려는 절절한 갈망을 들었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보다 크고, 시대보다 멀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것은 증오가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도 끝내 노래하려 했던, 인간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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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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