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이면 이민 123주년을 맞는 미주 한인사회는 분명 성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누가 얼마나 성공했는가’에서 ‘그 성공이 공동체에 어떻게 환원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커뮤니티 재단이 있다. 뉴욕에 기반을 둔 KACF(Korean American Community Foundation)와 LA에서 설립된 KAF(Korean American Foundation)로 대표되는 한인 커뮤니티 재단들은 개별 기부를 넘어, 공동체 차원의 전략적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커뮤니티 재단의 핵심 역할은 흩어진 선의를 모아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데 있다. 취약계층 지원, 시니어 복지, 정신건강, 차세대 육성, 커뮤니티 조사와 정책 기반 마련 등은 개별 비영리단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재단은 이 간극을 메우며, 비영리단체들이 본연의 사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정과 행정의 토대를 제공한다.
미국 사회에서 이 분야의 대표적 모델로 꼽히는 유대계 커뮤니티 재단 시스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기금 조성, 전문적 심사, 투명한 배분,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제도화해 왔다. 유대계 디아스포라를 위한 교육과 복지, 문화와 정체성, 정치적 영향력까지 아우르는 이 구조는 ‘기부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LA에 본부를 둔 KAF의 최근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KAF는 창립 7년 만에 연간 배분액 100만 달러를 돌파하며 남가주 한인사회 첫 커뮤니티 재단으로서 실질적인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최근 열린 ‘2025 커뮤니티 그랜트 시상식’에서는 23개 비영리단체에 22만2,500달러가 전달됐고, 올해에만 지정기금을 포함해 77만 달러 이상이 집행됐다.
KAF는 10만 달러 이상 기부자로 구성된 ‘파운더스 서클’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약 75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으며, 1,000만 달러 규모의 인다우먼트 펀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의 기부금은 일반기금, 목적기금, 기부자 조언기금(DAF) 등으로 나뉘어 운용되며, 한인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분야에 배분된다.
KYCC, 한미가정상담소, 코리아타운 시니어센터 등 현장에서 검증된 단체들이 선정됐다는 점은 재단의 심사 역량과 방향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직업훈련을 통한 자립을 지원하는 ‘KAF 임팩트 어워드’ 신설은 성과 중심의 접근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KAF의 의미는 단순한 기금 규모를 넘어선다. 메이저리거 김하성 선수의 기부 사례에서 보듯, 재단은 개인의 선의를 공동체 전체의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신뢰의 매개체다. 한인사회 최초의 싱크탱크 KAI와 협력해 대규모 종합 설문조사를 후원한 것 역시, 복지를 넘어 정책과 대표성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분명한 것은 미주 한인사회가 다음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의 성공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한인사회는 ‘성공한 개인들의 집합’을 넘어 ‘제도화된 공동체’로 진화해야 한다.
한인들의 정치적 대표성, 사회적 안전망, 차세대 리더십은 시스템과 인프라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커뮤니티 재단은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플랫폼이다. KAF는 지금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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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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