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다.
동지섣달 짧은해에 저녁을 먹고나면 쌩쌩 불어대는 겨울바람속에 펴 놓은 우산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 동네 초가지붕 위로 소리없이 하얀 눈은 소복히 쌓여가고 있었다.
추운날 온기를 더해주는 옹기가마에서 구워낸 거무스레한 황토색의 화로는 용도도 다양하지만 그 시절 우리들에게는 마음의 아랫목 같았다.
무엇이든지 귀한 시절 화로가 한곳에 금이가 철사줄로 몇번을 돌려매고 끝이 만나는 곳을 집게로 연결해 꽈배기처럼 비비 틀어 쓸 수 있던 화로는 새 화로보다 더 단단했다.
그 화롯가에 초롱초롱한 까만 눈망울에 쇠 꼬챙이로 얼음을 찍어대며 썰매를 타다 거칠어진 작은 손들은 화롯불을 쬐여가며 조잘대기 시작했다.
연세드신 할머니는 화롯불이 추운밤 잠을자는 가족들에게 훈훈함을 더해주자고 빨리 삭을까봐 인두로 재를 꼭꼭 덮어가며 빨간 불덩어리를 꾹꾹 누르고 계셨다.
할머니가 하시는 일이 재미가 있어 보여 인두를 빼앗아 한번 해 볼라치면 할머니는 재티나고 불씨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꾸중하시며 심심하면 할아버지한테 옛날 이야기나 해달라고 말문을 열어 주셨다.
할머니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전에 긴 수염을 쓰다듬으시며 장죽에 담배불을 붙여 피우시는 할아버지께 청하였다.
학교 다닐때 선생님이나 또는 유난히 옛날 이야기를 잘 해주는 친구나 할아버지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예외없이 주제의 서두가 꼭 같았다.
한 나그네가 밤길을 걸어 가는데 날이 어두워 하룻밤을 묵어갈 곳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좀처럼 인가가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짐승 울음 소리만 나는 컴컴한 길을 계속 가던중 아주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여 기쁨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나그네는 부지런히 걸어 인가에 도착하여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니 주인이 나타나자 조심스럽게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주인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어서 들어오라고 메고있던 봇짐까지 챙겨 주었다. 잠자리를 허락해 주는것도 고마운데 얼마 지나 문이 열리더니 조금 헐어 모퉁이가 벗겨진 소박한 밥상을 들여와 찬은 없지만 시장 할테니 요기를 하라는 것이다. 나그네의 가슴속엔 고마움과 베푸는 정에 편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아 가던 길을 갔다는 이야기들이다.
그가 쉬었던 작은 방 한칸, 이 시대의 별 다섯개의 휘황 찬란한 고급호텔에 비길 수가 있을까. 소박한 밥상또한 산해진미, 진수성찬에 비교할 수 있을까.
비록 보잘것 없는 두 사람의 인연이 닿은 첫 만남이었지만 그 진실함과 순수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전부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버리는 시간들은 고운색의 단풍들도 퇴색 되어 다 부서지고 손바닥만한 잎사귀는 말라 아스팔트 위를 차가운 회오리 바람에 쓸려 몰아칠 때면 쏴~쏴하며 딩구는 소리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의 파도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다.
12월. 세모의 끝자락은 모두가 마음이 뒤숭숭하며 그냥 총총걸음이다. 가는 세월, 시간속의 무상함, 덧 없는 흐름, 비 맞은 땡중처럼 입속에서 되뇌이며 딱히 갈 곳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갈 곳이 많아지는 것 같은 요즘의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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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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