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6시면 나는 아파트 단지의 소나무 길을 운동삼아 걷는다.
쌀쌀한 아침 공기가 내 몸의 열기로 시원하게 느껴질 때 쯤이면 어김없이 이 길을 지나가는 중국계 노 부부를 보게 된다.
먼저 할아버님이 약간 위쪽을 쳐다보고 앞서 걸어가시면 그 뒤를 대 여섯보쯤 떨어져 할머님이 약간 아래쪽을 쳐다보며 쫓아 가신다. 냉랭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할아버지 표정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도 할머님의 것으로 보이는 여성용 가방이 늘 할아버지 손에 들려져 있다.
이왕 가방까지 들어주실 양이면 손도 좀 잡으시고 나란히 가시면 좋으련만 매일아침 어딘가를 함께 가시면서도 저렇게 남같이 구시다니.....시대적 관습이 이젠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평소보다 20분쯤 늦게 나갔더니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파트 앞동에서 나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여느때 처럼 앞서 가시던 할아버님이 갑자기 계단 앞에서 멈춰 서셨다. 그리고 할머님이 다가가 할아버님의 팔을 잡으시고는 함께 계단을 올라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나란히 계단을 다 오르시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또 앞서 나가시는 할아버지의 한결같은(?) 모습에는 과연 그 할아버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할아버지를 보는 내 눈에도 조금은 변화가 일어났다.
할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어색해 보이는 할머니 가방이 정겹게 잘 어울려 보였고 앞서 가시던 냉랭하고 무뚝뚝함이 할머니를 위해 길을 터 주시는 믿음직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론 매일 아침 보게되는 그분들의 구시대적인 걸음걸이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 내 마음에서 사라졌다.
공공 장소나 대중 앞에서도 서로의 감정과 애정 표현이 자유롭고 대범해진 요즘의 젊은 세대들,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고 밀착해 걸어가는 그들에게 남편과 나란히 걸으면서도 가끔씩 손을 잡는 내 모습 또한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다.
앞뒤로 서서 내외하며 걸어가든,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든, 온몸을 부여잡고 걸어가든 시대적 표현 양상은 틀려도 사랑이란 한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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