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오월의 꽃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가을 바람소리만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온다. 문득, 오월의 꽃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할아버지 한 분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방금 노인대학에 다녀오신다는 할아버지 한 분을 뵈었다.
집안은 온통 우리 고유의 골동품들이 은은하게 장식됐고, 구석구석 누군가의 손길이 흠뻑 깃들여져 있는 뒷뜰의 질서정연한 화초들이 나를 사로 잡았다.
조용하시고 인자한 성품을 지니신 할아버지께서는 꽃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일일이 내게 설명해주시며 당신께서는 아름다운 천국에 살고 계신다며 내내 미소를 띄우시며 흐뭇해하는 모습, 또한 큰아들(클린턴)이 매달 꼬박꼬박 용돈을 주니 고마운 일이라며 우스개 농담으로 껄껄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부엌 씽크대 밑에 놓여 있는 키높이 받침대는 키작은 할머니를 위해 손수 만들어 놓으신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몇 달 후, 할아버지를 뵙기위해 노인대학을 처음 방문했다. 마침 그곳에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영어배우는 모습들, 또 몇 몇분은 내가 누구의 자제인지 궁금해 하시며 장기와 바둑을 두시면서 말장난도 하셨다.
쭉 둘러앉아 세상사는 얘기에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가하면 또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하며 두 눈가에는 설움이 그윽하게 맺혀있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제2의 고향에서 어울려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모습들에서 해바라기 꽃향기가 내 코끝을 스쳐간다. 젊었을 때 전기 기술자이신 할아버지께서는 그 안에 모든 일들을 도맡아하시고 또 부회장이 되셨다면서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자부심에 흡족해 하셨다.
내 만류도 뿌리치고 끝까지 나를 배웅해주시며 얼마전에 여행을 다녀오셨다며 조그마한 손부채를 내게 주시며 어여 가라 하셨다.
어릴적 내 할아버지의 그리움이 복받쳐 뒤범벅이 되었다.
자연과 사랑이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 이후로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지금도 노인대학에서 열심히 봉사하시고 계실 할아버지의 근황이 왠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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