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단속에 불응, 4명의 백인경관에게 죽도록 얻어맞는 장면이 비디어테입에 찍혀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경찰의 과잉진압행위를 재판대에 올리고 또 92년 LA폭동의 빌미를 제공했던 인물 로드니 G. 킹.
LA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이겨 380만달러의 보상금과 160만달러의 재판비용을 받아낸 그가 아직도 재판정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인즉슨 "내몫으로 돌아와야 하는 돈을 변호사들이 착취하고 있다"는 것.
그는 94년 승소할때까지 무려 24명의 변호사의 고용과 해고를 계속했다. 그다음에 그는 다시 변호사를 최소 5명을 갈아치웠다. 승소후의 변호사고용은 "아군이었던 변호사들이 변호사비용으로 너무 많이 돈을 뜯어갔으므로 그를 다시 뺏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9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구타당하고 있다. 당시는 경찰로부터 그리고 지금은 영악한 변호사들로부터 얻어맞고 있다"고 그는 지난해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분노를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변호사들은 보상액이 킹에 수중에 떨어지자 마자 갖은 법적수단을 동원하여 계약내용보다 더 많은 돈을 갈취, 원래의 변호비용보다 무려 100만달러 이상을 더 챙겼다. 그는 보상액에서 25%만 변호비용으로 지불키로 계약했으나 변호사들은 총230만달러를 받아내 킹자신이 받은 190만달러를 능가했다고 주장했다.
킹은 이에 항의하여 지난 6년동안 여러번의 법정투쟁을 시도했다. 변호사의 이름을 돌아가며 거명하면서 소송을 제기했으며 새로운 변호사들을 고용하는데 수십만달러의 돈을 투입했다. 법원은 변호사비용이 문제가 된 이소송들을 되도록 재판전 합의로 해결되도록 유도했으나 여러번의 중재과정이 결국은 변호사에게 유리한 결정으로 끝나자 킹은 또다시 비싼 변호사를 샀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킹은 변호사들을, 또 변호사들은 맞고소로 킹에 대항했으며 변호사들끼리 소송을 제기하면서 변호사비용 전쟁은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로드니 킹은 재판이 일단락된 94년 이후 알타디나에서 인랜드 엠파이어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동생의 건축회사 직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옛버릇은 못버려 감옥에도 심심찮게 들락거렸다. 이런 저런 형사사건으로 체포된 것이 91년이래 무려 7번이며 올해 초에도 16살 딸과 노모를 폭행, 수개월간 교도소에서 살았다. 커뮤니티 봉사형으로 대체할 수 있었으나 그는 새벽 7시까지 일어나 일터로 갈 자신이 없다며 차라리 감옥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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