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층 여성들이 직접 체험해 책, 영화 제작
여자 권투가 미국 문화의 주류로 진입하고 있다. 페더급 권투 선수로 훈련받으면서 자신의 분노를 분출시키는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드라마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영화 ‘걸 파이트(Girl Fight)’가 지난 금요일에 개봉되었는가하면 세계 최고의 여자 권투선수로 꼽히는 루시아 라이커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섀도우 박서스(Shadow Boxers)’도 전국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면 2월에 선댄스 채널에서 방송될 예정이며 프로지망생 타이린 맨슨에 대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줄 위에서’는 작년도 오스카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그런가하면 영국의 저널리스트로 프로권투 선수이기도 한 케이트 시큘리스도 최근 회고록 ‘권투선수의 마음:어떻게 링을 사랑하게 되었는가’를 출판했다.
여자 권투선수가 썼거나 그들에 대해 그린 이들 책이나 영화는 남자 권투선수가 주인공이었던 인기 영화 ‘로키’나 ‘더 챔프’에서와 같은 영웅적이고 로맨틱한 내용이 없다. 대신 신체 이미지나 여성성과 공격성 사이의 균형잡기나 남자가 지배적인 영역에서 인정받기 같은 이슈들을 다룬다.
이처럼 덜 센티멘털한 이유중 하나는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구경꾼들이 아니라 바로 권투를 한 당사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자의 경우 많은 선수들이 가난하고 무식하므로 유식한 구경꾼들이 실제보다 더 멋지게 그렸지만 1990년대 말에 2년동안 프로 선수로 활동한 시큘리스는 물론 ‘섀도우 박서스’를 제작한 캐챠 밴코우스키, ‘걸 파이트’를 감독한 카린 쿠사마 역시 골든 글로브스 대회에 출전했었던 선수다.
이들이 권투도 하고 글도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투에 매력을 느끼는 여성들중에는 교육수준이 높은 화이트칼러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밴코우스키는 예일대학을 졸업한 프리랜서 텔레비전 광고 제작자고 건축가 출신으로 뉴욕시에서 교사로 일하는 디 하마구치는 1995년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토나먼트 골든 글로브대회에 여성들을 처음으로 참전케 한 인물이다. 전국 페더급 챔피언 로잘리 파커는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으며 1999년도 골든 글로브 결승전에 올랐던 텐리 진키는 스미스 칼리지 졸업생으로 패션업계 홍보일을 하고 있다.
한편 여성에게 문호가 개방된 1995년 이후 골든 글로브대회의 여성 신청자 숫자는 10배가 늘었다. 지난 4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챔피언십 대회의 경우 여성은 전체 참가자중 거의 20%를 차지했다. 현재 미국의 여자 권투선수는 아마추어가 1500명 이상, 프로가 400명 정도로 그중에는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지어, 조지 포먼의 딸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2004년부터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시키려는 움직임도 강하다.
남자들은 돈을 벌려고 권투를 하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챔피언십 대회조차 상금이 1만달러를 넘는 일이 드물기 때문으로 이들이 글로브를 끼는 이유는 미묘하고도 다양하다. 시큘리스는 "남자들은 게토에서 벗어나려 권투를 하지만 내게는 권투가 게토로 들어가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밴코우스키는 "나는 그것이 궁극적인 도전이기 때문에, 나의 자아개념을 확장시켜 주기 때문에 싸운다. 폭력과 공격성 앞에 품위와 세련이 박살나는 것이 상쾌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링을 벗어나면 의외라 느껴질 정도로 여성적인 이들은 아직 여성권투계의 기반이 취약한 탓에 남자선수들처럼 랭킹도 확실히 매겨지지 않았고 권투경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프로모터들이 여자 선수들에 투자하기를 꺼리는등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해있다. 그러나 앞으로 라일라 알리 같은 프로들의 인기가 커지고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등 여건의 변화가 오면 스포츠 전문 TV들의 중계방송도 많아지는등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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