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그린. 24세. 100미터 달리기와 400미터 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 선수. 그가 100미터를 1등으로 달린 뒤 흐르는 눈물을 마냥 훔치며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텔리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70년대에 부상을 당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그 꿈을 자신에게 실어준 코치에게 이 메달을 바치고 싶다면서 우는 그의 눈물을 바라보자니 가슴 한구석이 젖어왔다. 오직 한가지 목표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저당 잡힌 채 겪어야 했던 그의 고통과 인내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눈물과 환희, 좌절과 격려가 교차하며 전세계 200개 회원국가에서 1만5,000명의 선수들과 임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17일 동안 개최되었던 시드니 올림픽의 한 장면이었다. 올해 27회로 창설된 지 벌써 104년. 더 잘 사는 사회, 더 풍요로운 사회, 더 평화로운 사회를 추구함으로 이제는 확실한 사회 문화운동으로 자리잡은 올림픽. 그러나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 규모가 아니라, 평화와 화합이라는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바로 이같은 한 선수의 순수한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그의 눈물이 생각났다.

일전에 패사디나 시빅 오디토리엄에서 오주영군의 바이얼린 연주를 들었다. 에사-페카 살로넨의 신들린 듯한 지휘로 LA 필하머닉과 협연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열정적이던지. 19세 나이답지 않은 진지함과 깨끗한 마스크에 깃들인 고뇌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가 1996년 뉴욕의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신동만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리라. 팬들이 그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빠른 템포의 악장을 연주할 때, 거추장스러운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마치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듯이, 보의 움직임에 따라 왼쪽 발을 들썩이며 구르는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악기가 방금 내보낸 음을 찾으려는 듯한 섬세한 동작들이 참 신뢰스러웠다.

그는 잠시라도 자신의 연주가 쉬는 순간이 되면 바지 호주머니에서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며 얼굴에 흐른 땀을 닦았는데, 바이얼린 몸체도 닦는 것을 보고 어지간히 땀을 흘렸구나, 멀리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연주 도중, 걷어도 올라가지도 못하게 만든 길다랗고 검은 턱시도 소매를 약간 걷어올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딱딱한 정장 차림으로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 올라오는 무대 위에서 만인이 자신을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를 하는 청년의 마음이 얼마나 긴장이 되었으랴. 사람들은 그가 천재니까 연주도 쉬울 거라고 짐작하기가 쉽겠지만, 피나는 연습과 자기 훈련 없이 어떻게 무대 위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연주를 마치고 공손히 인사한 뒤 무대 뒤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예술가의 외로움이 잔뜩 베어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땀을 생각했다. 오케스트라의 음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연주해야 하는 솔로이스트의 고뇌를 짐작해 보았다.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며 인간은 역시 아름답다는 인식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예술을 만들고 예술을 감상할 줄 알기에,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인체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모두 동원하여 사상과 이념을 떠나 올림픽이라는 행사를 함께 할 생각을 할 수 있기에, 인간은 아름답다. 땀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한, 우리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