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승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SBS TV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같은 프로그램에서 감초 역할을 하던 그의 모습을 보고 ‘성질 나쁘겠다’고 생각 했었다. 그가 드라마 속에서 연기를 할 때도 배역과 겉도는 것처럼 보였다.
모델 출신으로서 방송계에 입문하여 방송밥 먹고 사는 그의 모습은, 신체 건강하고 잘생긴 남자가 걸어갈 수 있는 성공적인 선택일 뿐이었다.
영화 <리베라 메>가 개봉하는 날, 나는 극장에서 무대인사 차 나온 그를 처음 보았다. 정말 그는 키가 컸다. 그리고 일자형의 짙은 눈썹이 인상을 강하게 만들었다. 유지태 정준 김규리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그는, 촬영 끝난 지 한참 되었지만 아직도 극중 배역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임창정의 연적으로 등장한 후 <자귀모> <신혼여행> <세기말> 등의 영화에 연속적으로 출연했었다. 그러나 모두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심 고소해 하기까지 했다. 차승원이 나오면 흥행이 되지 않는구나.
나는 그를 배우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리베라 메>를 본 후 ‘어, 저 사람 이제 배우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는 몰라보게 성숙한 연기를 펼쳐보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배역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배역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은 고스란히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리베라 메>에서 차승원이 맡은 배역은 연쇄방화범. 악인이지만 무작정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다. 차승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무대인사가 끝난 후 극장 휴게실에서 한 시간동안 그와 영화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주어진 배역을 추상적으로 연기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버리고 희수의 내면으로 들어가려고 몰입했습니다."
<리베라 메>를 찍는 동안 차승원의 사생활과 관련된 괴담이 방송가를 떠돌기도 했었다.
부인과의 관계를 묻자, 부인 역시 현재의 그의 모습에 만족해 하고 있으며 아주 사이가 좋다고 대답했다.
그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 모델계를 떠나 방송에 들어왔지만, 그 동안 원치 않은 역할들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가벼운 모습에 스스로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처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했다.
차승원의 다음 작품은 <주유소 습격사건>을 만든 김상진 감독의 <신라의 달밤>.
원래는 박중훈의 자리였지만 캐스팅이 바뀌면서 그에게 배역 제의가 들어왔다. 상대역은 이성재. 나는 그가 다음 작품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가식 없이, 진솔하게 자신의 배역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익혔으므로. 그 자신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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