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돌고 돌 듯 코미디도 돌고 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던 지난 시절엔 실없는 코미디가 대중을 웃겼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통렬함은 보는 이를 후련하게 하는 힘을 지녔었다. 그것은 시대를 짓누르는 아픔을 허탈과 공허로 극복하려던 역설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썰렁 코미디’가 재도래했다. 마침내 깨달은 경제적 풍요의 허상이 허탈해서 일까. 어려운 시대를 반영하듯 ‘허무 개그’가 사람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썰렁함과 허무함
코미디에는 공식이 있다. 관객의 예상을 뒤엎으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반전을 만드는 것이 바로 코미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미디 공식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닳고 닳은 ‘TV족’들 앞에 코미디는 무안해졌다. 이제 ‘어디 얼마나 웃기나 한 번 보자’며 앉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코미디를 보여줘야 하는가 고민하는 것이 개그맨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것을 뒤집는 것이 바로 썰렁함과 허무함이다. 코미디에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무반전, 턱 없는 진지함, 실없음 등의 기법으로 새로움 아닌 새로움을 전하고 있다.
허무한 개그의 허무한 탄생개그맨들은 일상의 절반을 아이디어 회의로 보낸다. 하지만 아이디어라는 것이 익은 감 떨어지듯 그렇게 때 되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콩트 슬랩스틱 토크 등을 거쳐 결국 싱겁기 그지없는 ‘허무 개그’ 영역에 도달했다. 평상시에 주고 받는다면 "비싼 밥 먹고 흰소리 한다"는 핀잔 받기 쉬운 농담으로 이어진 콩트가 바로 ‘허무 개그’라 할 수 있다.
카운셀링을 소재로 허탈함을 던져주는 KBS 2TV <개그 콘서트> ‘닥터J’ 코너는 이러한 내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담자: 선생님, 저는 밤만 되면 스토커의 전화벨 소리에 시달립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저를 괴롭힙니다. 선생님.어떻게 하면 이 고통의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닥터J: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세요.
닥터J로 출연하는 개그맨 이병진은 아이디어 개발 동기를 묻자 "전 원래 성격과 말투가 그럴뿐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MBC TV <코미디 하우스> ‘허무 개그’ 코너 역시 아이디어 회의 동안 "아이디어가 없다"는 말을 수없이 주고 받으며 급기야 그러한 상황을 개그로 만들었다. 같은 MBC TV의 <코미디 닷컴> ‘알까기’ 코너 역시 코미디언실의 바둑판을 이용해 즐기던 알까기를 진지한 해설을 곁들여 실없이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허무함 이상의 허무함’허무 개그’는 복잡한 생활 속에 ‘머리 굴리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허상을 꼬집는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이해를 따지고 계산하는데 익숙한 우리들의 모습을 비꼬는 듯 하다. 또한 정형화된 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성화 된 행동 양식의 허를 찌른다.
코미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협회 박경덕 이사는 "썰렁한 개그를 보면서 복잡한 머리를 잠시 풀어보는 브레인 스토밍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무함의 끝이 두렵다개그맨들은 한결같이 아이디어 생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늘 그렇듯 ‘후속편’이 걱정스럽다. 이제 인기를 끌고 있는 ‘허무 개그’의 다음은 도대체 무엇으로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는 KBS MBC 출신 개그맨들은 행복한 편에 속한다. 자신들이 출연할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리포터나 탤런트 혹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난 SBS 출신 개그맨들은 이런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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