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월드 시리즈 문신을 몸에 새긴 7번 전철을 탈 때가 있다.
보통 운행되는 붉은 전철을 타는 것보다 그런 날은 그냥 기분이 좋다. 메츠와 양키스의 로고가 여기 저기 그려져 있고 월드 시리즈가 표시된 이 움직이는 기념물은 볼 때마다 작년 가을의 환상적인 월드시리즈를 기억하게 한다.
메츠가 내셔널리그에서 승리를 확정짓자 TV 아나운서들이 늦은 밤, 셰이 스타디움을 찾아 은빛 형광 불빛이 새어나오는 푸른 원형 경기장 앞에서 “이제 며칠 후면 이곳에서 뉴욕이 연고지인 두 팀이 맞붙는 월드 시리즈가 열린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방송을 했었다.
그리고 4회의 경기를 갖는 동안 셰이 스타디움과 브롱스의 4번, 플러싱의 7번 전철은 전세계에 화제로 등장했다.
나 역시 ‘고국의 팬‘들에게 내가 타고 다니는 7번 전철이 매일 그 셰이 스타디움 옆을 지나간다고 이 메일을 띄웠었다.
똑같이 플러싱과 퀸즈보로 플라자를 오가는 차량이라도 이왕이면 월드 시리즈 기념 전철을 타면 기분이 좋은 것은 바로 작년의 그 열기가 너무 재미있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오는 4월 1일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개막되지만 아마 작년과 같은 경우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99년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와 격돌하여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을 놓치고 절치부심, 작년에 드디어 챔피언 자리에 올라 월드 시리즈 자리를 놓고 양키스와 대결해 모든 뉴욕 팬들을 열광케 했던 메츠, 올해는 견고한 투수 마이크 햄튼의 공백을 메워 줄 사람도 없고 마이크 피아자가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해 줄 지 모르니 더욱 더 이 움직이는 기념물이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러한 기념물이 한인사회에도 있을까?
한국처럼 웬만큼 유명하면 기념비나 기념탑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뉴욕 한인사회에는 아예 없는 것이 또 문제이다.
뉴욕의 올드 타이머들이 어느 한 장소를 가면 한인사회 초기의 세월을 떠올릴 수 있고 후세들이 선배들을 기릴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겨우 하나, 맨하탄 브로드웨이 32가 선상 거리에 자그마하게 붙어있는 ‘Korea way. 한국타운’ 표지판이 있긴 하다. 한인들 삶의 중심부인 그곳에 뉴욕 한인이민 역사상 최초로 이 표지판이 정식 설치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지난 95년 10월 23일부터 부착된 그것이나마 그래도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한테 “저기 잘 봐. 조그만 팻말에 한국타운이라고 써 있지”하고 궁색한 자랑을 한다.
L.A. 헐리우드에 가면 중국식 건물의 극장이 있는 광장 앞마당 콘트리트 바닥에 인기연예인 2백여 명의 사인과 손바닥, 발바닥 모양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욕에도 충분히 그런 곳이 있을 만 하다.
이민 박물관이나 코리언 아메리칸의 광장이 생겨 이민 1세들의 발자취를 영원히 남기는 상징물이 필요하다.
거기에 한인사회에 공헌한 이민 1세, 그리고 뉴욕에서 활약하는 자랑스런 예술인의 이름과 손바닥 모양을 새기자.
세계 클라식 음악계에 이름이 오른 홍혜경, 정경화, 조수미, 신영옥, 서혜경, 사라 장, 한나 장....또 뉴욕타임스 문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백남준, 김보현, 바이런 김, 강익중, 변종곤, 서도호, 문범강 등등 한인 예술가들을 등장시키자.
없으면 일부러 자랑거리를 만들 판인데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한인 예술인들을 우리는 너무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았나 싶다.
한인회, 한인단체, 한국문화원, 수백 명의 문화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인 2, 3세는 물론 한국 방문객과 타 인종에게 자랑스레 보여 줄 수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야 할 시점이다.
한인 사회의 위상을 알리고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높게 할 이 기념물이 맨하탄 브로드웨이 한인타운이나 플러싱 지역에 세워지기에는 많은 힘과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자.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후세에 고스란히 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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