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쎄이션!"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 영화 <친구>(씨네라인2, 곽경택 감독)가 초유의 ‘대박’을 터뜨린 것을 지켜보는 영화인들은 거의 질린 표정이었다. 경이적인, 그래서 믿기 어려운 스코어와 열기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앙드레 김은 특유의 액센트까지 섞어 ‘썬∼쎄이션’이라 표현했다. 앙드레 김은 주연 배우 장동건에게 지난 1일 축하 전화를 걸어 "썬∼쎄이션! 10년 동안 쌓여 있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렸어요"라며 감격했다. 실제로 <친구>의 개봉 초반 분위기는 놀랍다.
<공동경비구역 JSA> <타이타닉> 등 모든 영화의 기록을 한꺼번에 깼다.
■왜 터졌나 <친구>의 흥행 성공에 대해 의아해 하는 영화인들이 꽤 있다. <친구>가 <공동경비구역 JSA>나 <쉬리>같은 ‘국민영화’로 대접받을 만한 요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개봉 한 달여 전부터 흥행 분위기를 탔다. 대중문화의 주요 코드에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 덕택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대중문화의 주요 흐름은 복고(촌티) 마케팅과 ‘아이 러브 스쿨’로 대변되는 우정으로 급변했다. 1년여 가량 맹위를 떨쳤던 엽기는 급격하게 세(勢)를 잃었다.
검정색 교복 비주얼의 <친구>는 이 ‘우정과 복고(또는 향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터질 수밖에 없는 외부 요인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영화의 힘(절묘한 연기, 탄탄한 연출, 시의적절한 마케팅)이란 내부 요인과 화학 작용을 일으켜 흥행 폭발이란 결과를 낳았다. 그 앞에선 "<친구>는 남성영화라 여성 관객에게 소구력이 떨어질 것"이란 거친 이분법적 예상은 무의미했다.
■너희가 교복의 정서를 아느냐 아무리 대중문화의 유행과 맞아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교복 시대의 정서를 알 리 없는 비교복의 신세대까지 <친구>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실제로 <친구>는 1970∼80년대의 정서가 깊숙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것에 대한 향수 자체가 불가능한 신세대가 어떻게 <친구>에 감동할까.
이에 대한 답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정서’에서 찾아야 될 것이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스피디해지는 세태에 비춰 우정은 빛바랜 감정으로 치부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 ‘구닥다리 감정’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원하고 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다.
<친구>는 바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같은 작품인 셈이다.
■블록버스터도 아닌 것이 <친구>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순제작비가 18억 원. 규모로만 보면 ‘보통 영화’다.
그러나 <친구>가 만들어내는 감동은 블록버스터급이다.
바로 이 점이 <친구>가 갖고 있는 최고 미덕이다.
블록버스터를 둘러싸고 ‘큰 것만이 흥미를 끌 수 있다’와 ‘덩치만 큰 빈껍데기’로 갈라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진솔한 우리 이야기를 꺼내 든 <친구>의 태도는 값지다.(블록버스터 지향을 큰 것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몰아 세우는 사람들도 정반대의 사이즈 콤플렉스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계속되는 자극에 물리고, 그래서 한 번쯤 평범한 것에서 감동과 가치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친구>를 피해 갈 수 없다. 따듯한 봄날, 이런 전화를 하고 싶을 것이다.
"친구야! <친구> 보러 가자!"
정경문 기자 moonj@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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