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같은 친구만 있으면’(With a Friend Like Harry)
시치미 뚝 메고 사람 잡는 영화로 시종일관 안절부절하며 숨을 죽이고 불안과 불상사와 또 다른 살인을 기다리게 되는 히치콕 스타일의 뛰어난 심리스릴러이다. 노골적 유혈폭력 없이 칼날이 소리 없이 서서히 육체 속으로 파고들듯 긴장과 서스펜스가 심장을 꿰뚫고 들어와 죄어들며 치사량의 불안과 공포를 남겨놓는 바람에 숨이 가쁘다.
영화는 지나친 호의와 극단적으로 잘못 나간 우정에 관한 병적이요 사악한 풍자이자 새카만 코미디이기도 한데 감독의 서스펜스 엮어 나가는 솜씨가 차분하고 확실하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이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이어서(적어도 겉으로는) 기분 나쁘도록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더욱 집요하게 느껴지는데 모골이 송연해지는 영화다.
한 여름 휴가 차 미셸(로랑 뤼카스)과 그의 아내 클레어(마틸드 세녜)가 어린 세 딸을 에어컨이 고장난 작은 세단에 태우고 시골집을 향해 달린다. 젖먹이의 끊임없는 울음과 다른 딸아이의 보채는 소리와 장소의 협소감과 더위 때문에 처음부터 사람을 짜증나게 만든다(기막힌 심리조작인데 이 첫 장면과 상반되는 라스트신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미셸은 중간에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 자기를 먼저 알아보는 학교 동창 하리(세르지 로페스)를 만나는데 미셸은 도무지 하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벤츠를 타고 금발의 육체파 약혼녀 플륑(소피 기예망)과 함께 스위스로 가는 중이던 살이 찐 하리는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자기 차에 태우라고 친절을 베풀면서 야금야금 미셸의 삶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자청해 미셸의 산속 집까지 함께 온 하리는 학창시절 때 미셸이 쓴 시를 줄줄 외우며 왜 미셸이 더 이상 글을 안 쓰느냐고 힐난하며 창작을 독려한다. 그리고 미셸의 광적인 팬인 하리는 미셸의 창작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원해 하나씩 제거해 준다. 제일 먼저 미셸의 부모에 이어 미셸의 동생이 제거되고 마침내 미셸의 아내와 아이들의 안전마저 위협에 빠지게 되면서 소극적이던 미셸이 하리에게 대항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셸은 하리의 괴이한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중단했던 글을 쓰게 되는데 하리는 미셸의 지옥서 온 뮤즈인 셈이다. 조야하고 물질 풍부한 하리와 전형적 서민이나 지적인 미셸은 생긴 모양이나 성격 그리고 그들의 여자에 대한 애정 표시와 성행위(왕성한 성욕을 지닌 하리가 고깃덩어리 같은 상체를 드러낸 채 성행위 후 오르가즘을 오래 지속시켜 준다며 날 달걀을 먹는 행위가 변태적인 자극감을 준다) 등 모든 것이 대조적인데 어떻게 보면 하리는 미셸의 숨은 욕망과 어두운 내면의 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바람에 문이 덜커덩대는 소리 그리고 새소리 등의 효과음과 음산 불길한 음악이 공포와 긴장감을 한껏 부추기는데 돌로레스 델 리오가 낭랑한 음성으로 부르는 애절한 ‘라모나’가 야릇한 여운을 남긴다.
떡 벌어진 체구에 친절 상냥하고 진지하며 늘 미소를 짓는 평범한 인간 속에 숨어 있는 광기가 터질까봐 내리누르며 참아내는 듯한 로페스(스페인 배우로 이 역으로 지난해 세자르상 수상)의 모습이 가공스럽다. 언제 살기가 터질지 몰라 불안하다. 그밖에 나머지 세 명의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한다.
감독 도미니크 몰(세자르상 수상). 등급 R. Miramax Zoe.
뮤직홀(310-274-6869), 모니카(310-394-9741), 빌리지(714-540-0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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