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Summer Time
감독 : 박재호
출연 : 김지현, 최철호, 류수영, 송옥숙, 배정윤
분류 : 드라마
등급 : 18세이상
개봉 : 2001. 05. 26
박재호 감독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
96년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 남성간 동성애 장면을 과감하게 묘사해 실험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그는 이듬해 상업영화 <쁘아종>으로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으려 했지만 주인공 박신양의 이름만 빛내주고 뒷전으로 물러앉고 말았다.
4년 만에 권토중래를 노리고 충무로를 노크한 작품이 그룹 `룰라’의 리드싱어 김지현을 앞세운 <썸머타임>(제작 싸이더스). 97년 대기업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눈물을 머금고 <고추 이야기>를 접었던 박재호 감독으로서는 마지막 메가폰을 잡는 심정으로 관객의 본능을 자극하는 세미 포르노그라피를 택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관객을 향한 박재호 감독의 구애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6일 극장에 간판을 내걸 <썸머타임>은 포르노 관객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법한 80년 광주를 무대로 삼고 있다. 운동권 수배자인 상호(류수영)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한적한 소도시의 목조건물 2층으로 숨어든다. 그는 우연히 아래층으로 뚫린구멍을 통해 희란(김지현)의 몸을 훔쳐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희란 역시 그의 집을 지키던 경찰 태열(최철호)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그와 결혼해 노예처럼 갇혀사는 처지.
태열이 무심코 떨어뜨린 열쇠를 주운 상호는 몰래 희란의 방으로 들어가 성관계를 맺으며 비극적인 운명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태열은 상호를 쏘아죽이고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겨눈다. 80년 광주와 삼각관계를 은유하는 주변 상황과 인물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이 영화의 서술구조에는 구멍과 열쇠가 다음 장면의 문을 여는 장치로 쓰인다.
상호는 방바닥의 구멍을 통해 아랫방을 엿보고 자위로 욕정을 달래다가 열쇠를 손에넣은 뒤 비로소 희란과 몸을 섞게 된다. 수배자의 2층방과 갇혀사는 아랫방이 80년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상징한다면 구멍과 열쇠는 욕망의 탈출구인 셈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인 구멍과 열쇠가 우연이 반복되면서 등장해 사실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우연이 필연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복선과 모든 장면을 하나로 꿰는 일관성이 결여돼 시나리오가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김지현의 어설픈 연기와 어색한 대사는 임창정 이후 또 한명의 가수 출신 스크린 스타의 탄생을 점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를 중심으로 삼각관계를 이루는 남자 배우들도 김지현을 받쳐주기에는 역부족인 느낌이다.
어차피 김지현의 옷을 벗겨 한몫 보려는 심산이었다면 왜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굳이 80년 광주를 끌어들였을까. 문제작 감독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흥행영화에 사회적 메시지를 접목하려고 시도했다면 아직도 박재호 감독은 가능성 있는 신인 감독에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흥행영화라고 해서 사회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설픈 양다리 걸치기는 관객으로부터 외면받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태양은 없다> <유령> 등으로 이어지는 제작자 차승재의 히트작 목록에도 큰 짐으로 남게됐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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