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세계 영화 산업의 심장으로 군림해온 할리웃. 캘리포니아의 자존심이자 LA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이 거대한 산업이 ‘조용한 탈출’ 속에 무너지고 있다.
올해 1분기 LA 지역에서 이뤄진 촬영 일수는 5,295일. 지난해보다 22.4% 급감했다. 한때 미국 영화·드라마 5편 중 4편이 이곳에서 제작됐지만, 이제는 단 1편만이 LA에서 촬영된다. LA의 촬영 산업은 단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고’ 있다.
실제 최근 3년간 LA의 연간 촬영 일수는 무려 58% 급감했다. 이는 단순한 생산 감소가 아니라 미디어 생태계 붕괴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촬영이 줄면 조명, 의상, 세트, 운송, 식음료까지 수많은 후방 산업들이 흔들리고, 결국 고용과 소비 전체가 얼어붙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LA라는 도시의 정체성이자 생존기반이었던 할리웃에서 엑소더스가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의 여파, 연이은 대형 산불, 노동자 파업, 상영관 감소,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 주와 해외에서 제공하는 파격적인 세액공제 혜택이 LA를 떠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조지아와 뉴멕시코, 캐나다, 영국, 호주는 각각 30~35%에 달하는 세금 환급을 제공하며 글로벌 콘텐츠 유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다.
유명 배우 케빈 코스트너는 유타주 남부에 1억 달러 규모의 스튜디오를 세웠고, 재커리 레비는 텍사스 오스틴 근처에 4,000만달러를 들여 제작 단지를 준비 중이다. 마크 월버그, 매튜 매커너히, 글렌 파월, 레이첼 맥아담스 등 유명 배우들도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 유타, 네바다 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제 캘리포니아는 콘텐츠는 기획하지만, 촬영은 하지 않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LA에서 기획된 드라마가 조지아에서 촬영되고, 할리웃 배우가 유럽에서 연기를 한다. 배우 벤 애플릭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캘리포니아는 영화 산업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영화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더 나은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 산업이 자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할리웃 엑소더스는 주택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LA에 거주하는 주택 소유주의 38.1%가 타주 주택을 검색 중이다. 인기 목적지는 라스베가스, 피닉스, 댈러스, 포틀랜드, 그리고 애리조나의 레이크 하바수다. 한 중개인은 “더 이상 LA에 집을 꼭 사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고급 주택 시장은 할리웃 엑소더스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절박해진 캘리포니아는 75억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 패키지 추진으로 위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많다. 다른 주와 해외에서 촬영하면 수백만 달러를 아낄 수 있는 현실 앞에서, ‘꿈의 공장’이라는 상징성 만으로 제작 업체들을 붙잡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2025년 기준 LA 대도시권 경제 규모는 약 1조5,000억 달러. 그중 콘텐츠 산업은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핵심 산업군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탈이 가속화된다면, 이 도시는 영화 산업의 심장이란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더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 유연한 노동 정책, 기술 인프라 투자 등 다각도의 개입이 절실하다. 콘텐츠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가 뒤쳐질 경우 할리웃는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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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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