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생각을 바꾼 것인가. 웃음이 많아졌다. 개막작인 <물랑루즈>부터 화려한 율동과 노래와 의상, 코믹한 캐릭터들이 웃음을 만들어내더니 어둡고 심각한 주제조차 재미있게 풀어가는 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전쟁, 의사소통, 가정의 파괴, 성 문제 등을 살피는 자세는 여전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유머가 넘치고 있다. 12일 칸에 처음 선보인 보스니아 영화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감독 다니스 타노비치). 비슷한 소재의 유고영화가 그렇듯 심각하고 철학적인 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깼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전선 한 참호에서 맞닥뜨린 양쪽 두 병사와 부상당한 그들을 구하려는 유엔평화유지군이 벌이는 해프닝 등 갖가지 상황이 시사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전쟁의 어리석음과 비극을 마지막에 송곳처럼 찔러 현지 언론과 비평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웃음을 찾으려는 칸의 선택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영화제 사상 두번째 장편 경쟁작으로 온갖 영화를 능란하게 패러디하면서 디즈니를 통쾌하게 비꼰 <슈렉>(Shrek) 과 코엔 형제의 <거기에 없는 남자>(The Man Who Wasn’t There)로 이어졌다. 1940년대 미국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흑백필름에 담은 이 영화는 무료한 일상을 탈출하려는 한 이발사(빌리 밥 손튼)의 행동과 심리에 재치를 담아 칸의 분위기를 밝게 했다.
독일 헤네케 감독이 프랑스어로 제작한 <피아노 선생>(La Pianiste)도 30대 후반의 독신여성인 피아노 여교수(이자벨 후퍼트)에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인 변태적 성행위를 그리면서 유머를 잃지 않으려 했다. 배우 숀 팬이 메가폰을 잡은 <서약>(The Pledge)에서 은퇴한 탐정 역을 맡은 잭 니컬슨은 블랙 유머를 발휘한다.
웃음 많아진 것을 두고 섣부른 비평가들은 "칸이 변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 올해 칸은 24년간 영화제를 장악해온 질 자콥 집행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물러나고 베로니크 카일라 사무국장과 티어리 프레모 디렉터의 양 체제로 바뀌면서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 그 한가지가 바로 대중성과 예술성에 대한 조화의 모색으로 보고있다.
리브 울만(스웨덴 여성감독) 심사위원장 역시 "가슴에 호소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이며, 다행히 올해는 머리에만 호소하는 지적이고 예술지상주의적인 영화가 한 편도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아직도 칸은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을 중시하며, 제3세계 영화에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칸다하르> 나 일본 고레- 에다 히로카주 감독의 <디스턴즈> 는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보다는 주제와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듯 보이고, 칸이 자기들이 배출한 스타 감독에 대한 애정의 표시로 초청한 포르투갈의 거장 마누엘 올리베이라의 <집으로 돌아오라>나 장 뤽 고다르나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은 진지하고 예술적이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재미와 예술성의 혼재. 그리고 전통과 새로운 변화의 모색. 그 가운데서 칸이 올해 어떤 선택을 할지는 20일 수상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칸 =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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