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U, 흑인선수차별 반대 1940년 학생시위 "정당"
60년전 뉴욕 대학(NYU)의 인종차별 정책에 항거하다가 불이익을 당했던 7명의 학생들이 마침내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시위주동학생들은 대학간 스포츠 게임에서 흑인풋볼선수 레너드 베이츠를 제외하는 것이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항의하다 3개월의 정학처분을 받았다.
그후 NYU측은 이 학생들이 취했던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던 NYU가 마침내 ‘베이츠 그룹’으로 불렸던 이들의 행동을 기리는 디너파티를 개최한 것이다. 이번 디너에서는 주동학생들이 초청된 것은 물론, 시위관련 사진 및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흑인선수 차별에 관한 각종 자료들도 전시됐다.
1940년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에벌린 마이젤 윗킨을 비롯한 7명의 학생들은 소위 ‘신사협정’의 부당성을 고발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다. 신사협정이란 당시 대중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학스포츠 세계에서는 보편적이었던 흑인운동선수 차별관행이었다.
신사협정은 두 대학팀간 경기가 있을 때, 한 대학이 흑인선수들의 출전을 거부하면 상대팀도 자동으로 흑인선수를 배제해야 한다는 협정이었다.
신사협정은 당초 남부의 대학들이 들고 나왔는데, 그당시 남부의 대학들은 대학간 경기에서 흑인선수들을 배제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하버드, 럿거스, 미시건대학 등 상당수 북부 대학들이 이에 응했다.
사건의 직접적 발단은 1940년 NYU가 그해 11월에 열린 미주리 대학팀간 경기에서 자기팀 의 스타였던 흑인선수 레너드 베이츠를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윗킨과 다른 학생들은 유인물을 배포하고, 대학본부 앞에서 피켓을 들고 ‘베이츠를 출전시키라’고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된 이 시위에는 4,000여명의 학생들이 합류했다.
이는 신사협정에 반기를 든 시위로서는 미 대학사상 최대규모였으며, 60년대 마틴 루터 킹이 진두지휘한 본격적인 민권운동보다 2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NYU측은 시위주동자들에게 강공으로 대응했다.
대학측은 베이츠 선수를 배제시키라는 미주리 대학의 요구를 수용했을 뿐 아니라, 시위주동 학생들에게 3개월 정학처분을 내렸했다. 그 중 두 명의 학생들은 끝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정학기간 중 2차대전에 징집되었기 때문이다.
그후, 이들의 행동은 대학은 물론이고 주변에서도 완전히 무시되고 망각되었다.
심지어, 본인들의 가족들도 시위를 정신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40년 가을은 대학가에 친공산주의 시위, 평화주의 시위, 스페인 파시즘 지원시위 등 각종 시위가 난무했고, 특히 NYU는 학생시위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럿거스 대학 생물학 교수로 재직중인 윗킨은 작년부터 동지들과 뜻을 규합, 자신들의 행동을 인정받기 위한 캠페인에 돌입했다. 그리고, NYU가 이들의 행동을 재평가함으로써 이번에 뜻깊은 디너파티가 성사된 것이다.
NYU측은 시위주동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과’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당시의 압도적인 사회적 현실하에서 대학측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시위주동 학생들의 행동 자체는 정당했고 후세에 권장할만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사실, NYU에서 신사협정과 관련하여 말썽이 난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1929년, NYU가 조지아 대학팀간 풋볼경기에서 흑인 러닝백 데이브 마이어스 선수를 배제했을 때도, 일부 교직원과 학생들 간에 집단항의 움직임이 있었다.
원래 신사협정은 19세기 남부에서 생겨난 인종차별의 유산이었다.
당시, 남부의 많은 주들은 흑인들은 백인선수들을 상대로 한 게임에 출전할 수 없다는 법조항을 갖고 있었다. 이 규정은 특히, 북부의 학교들로 하여금 남부 원정경기 때 남부규정을 따르도록 강제하는데 주안점이 있었다. 더러는 북부에서 열리는 경기에도 이 규정이 적용되었다.
40년에 발생한 시위에서 NYU학생 4,000여명이 베이츠의 출전에 지지서명했으나, 결국 열차는 베이츠를 남겨두고 떠나고 말았다. 그해, 10월 31일 열린 경기에서 NYU는 미주리 대학에 33대 0으로 참패했다.
시위는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됐다.
대학측이 계속해서 흑인 농구선수 짐 카워드를 출전정지 시킨데 이어, 카톨릭대학과의 육상경기에서 3명의 흑인선수를 배제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대학당국은 다음 달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주동학생들에 대해 불법유인물 배포혐의로 3개월 정학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이처럼 말썽많던 신사협정은 2차대전 이후 NYU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에서 점차 폐기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정치인들로부터 압력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NYU 역사학과의 제프리 새먼스 교수는 강조한다.
"대학스포츠사에서 묻혀졌던 중요한 운동이 빛을 보게 되었다. 때로는 스포츠가 인종차별의 강화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시위의 중심인물인 흑인선수 레너드 베이츠는 이날 만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NYU 자료에 따르면, 베이츠는 훗날 뉴욕의 공립학교 시스템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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