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들, 해야하는줄은 알지만 실천은 드물어
매주 수요일 밤, 워싱턴 DC 교외 알링턴에 있는 한 집의 안락한 거실에서는 10~20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모여 틴에이저용 멜로드라마 ‘도슨즈 크릭’을 시청한다. 워싱턴-리 고등학교의 어려운 ‘국제 학사과정(IB)’ 소속 졸업반 학생들로 대부분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그들은 학교 학생회의 간부들이며 모두들 대학에 갈 계획이다.
그리고 모두 다 백인이다.
재학생의 66%가 소수민족인 워싱턴-리 고교에서 이는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학생의 37%는 라틴계이고, 15%는 아시아계, 14%는 흑인이지만 백인이 다수인 학교에서나 마찬가지로 이어북도 만들고 학교 야구게임에도 나가는 것은 IB 소속 백인 학생들이다. "우리가 친구를 삼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않은데 왜 다른 인종 학생들은 학생 클럽 활동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베스 스켈턴은 인종 구성이 다양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다고 말은 하지만, ‘크릭 나잇’을 주최해 오는 지난 3년 동안 한번도 라틴계 학생을 개인적으로 초대한 적은 없다. "지금 모이는 아이들은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인데 그 중에는 라틴계가 하나도 없어요. 아무나 와도 되고, 오는 사람은 모두 환영하지만 내가 나서서 오라고 해본 적은 없어요"
워싱턴-리 고교의 복도에는 수십개 국가에서 온 틴에이저들이 오고 가지만, 이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도 그렇다. 베스나 그의 친구 크리시 앰브로즈는 그저 태어나서부터 아는 사이일 뿐이다.
고교시절은 틴에이저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갖게 되고, 자신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 정체성을 강화해나가는 시기이다. 미국 학교들의 학생 인종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이 문제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고교 교사로 UC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98년부터 고교생들의 생활을 연구해 오고 있는 대너 모란은 사회적 분리현상이 많은 고교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인종 구성이 다양한 학교에선 결국 라틴계 학생들이 다양한 교내 사교활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지요."
워싱턴 리 고교에서 비방반대연맹(Anti-Defamation League)이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또래 훈련 웍샵 ‘다양성의 세계’를 지도하는 마샤 데일은 "’얘들아, 악수하고, 친한 친구가 되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그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거든요"라고 말한다.
이 웍샵에선 다양한 피부색과 억양을 지닌 학생들이 소그룹을 구성, 서로 연관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 실습중 학생들에게 자신을 묘사하는 몇 개의 낱말을 선택케 하는 순서가 있다. 백인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분야부터 말한다. 음악을 사랑한다던가, 몽상가라던가, 글 쓰기를 좋아한다는 식인데 이민 온 학생들이 맨 먼저 말하는 것은 자신의 출신 국가다.
이민 학생들이 두 번째로 자신을 묘사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지만 백인 학생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들에게 종교란 보다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스스로 옷을 잘 입는다고 묘사하는데, 그 ‘잘’ 입는 기준이 그룹마다 틀리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액세서리, 자동차, 헤어스타일 등 모든 게 다 다른 것이다.
백인 학생인 카일 커드는 학생들 의도적으로 갈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자기 친구들의 테두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편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의 경우, 처음엔 시스템 때문에 격리된다. 그 다음에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백인 학생들의 전학을 막아줬다고 교사들이 말하는 IB 프로그램은 인기도 높고 학문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으나 학교 안에서의 인종분리를 심화시킨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IB 사회인류학 과목의 경우 학생 15명중 히스패닉은 단 2명뿐이다. 최근의 어느 날 담당교사가 그중 한 명인 말라디 로드리게스에게 출신국 엘살바도르에서 여성의 역할 및 억압상태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을 때 같은 날은 자신들의 존재가 빛나지만 평상시에 이들은 이 반에서 처신하기가 어색하다고 말한다. "이 반에 속한 것이 좋기는 하지만 마치 나 혼자 스페인어 사용 종족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처음 몇 달은 무서웠어요"
매리언 스프라긴스 교장은 더 많은 라틴계 학생들이 고급반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 문제일 수 있는가를 실감하고 있다. "때때로, 아이들은 고급반에 속하기를 원치 않아요. 자기가 민족 전체를 대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고립감을 느끼는 거죠. 그건 엄청난 부담입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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