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배우(俳優)라는 직업을 30년이 넘게 지켜온 김혜자. 그의 이름 앞에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고유 명사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로만 남기를 거부한다. 나이가 들어도 배우는 ‘배우’일 뿐이라는 것.
한동안 배우로서 방황했던 그가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앞에 나타났다. 연극 <셜리 발렌타인>을 통해서다. 1시간 40분을 혼자서 무대를 꾸려 나가느라 땀에 흠뻑 젖은 그는 여느 젊은 후배 못지 않게 예뻤다.
▲어머니가 아닌 인간으로 돌아간 셜리 발렌타인.<셜리 발렌타인>은 그저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로만 살아온 45살의 여자 셜리 발렌타인이 처음으로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막을 내릴 날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지난 달 22일부터 한 주의 6일을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보내고 있다. 계속 무대 위에 서왔던 배우도 모노드라마는 도전하기 힘든 장르인데, 10년만에 무대에 서는 그는 "꿈만 같다"고 표현한다.
"만약 이게 단순한 여자 연극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자 배우가 연기한다 뿐이지 이 작품은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두달 동안 하루 10시간씩 연습했다. 잠을 잘 때도 셜리가 나타났다. "제발, 셜리. 나 잘래"라고 되뇌이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이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굉장히 심각한 주제이지만 되도록 가볍게 전달하려고 해요." 이 때문일까. 빽빽이 들어차 보조석까지 마련한 극장에서 관객들은 계속 웃는다. 그의 천가지 표정과 만가지 행동에 빠져.
▲’주인공병(病)’에 걸린 배우왜 그는 드라마가 아닌, 연극을 택했을까.
그는 마루에서 걸레질하는 엄마 역은 <전원일기>로 족하다고 했다. "나이 든 배우들은 늘 뒤켠에 서 있는 엄마, 아빠 역할만 해야 하나요. 전 ‘주인공병’에 걸렸어요. 주인공이 아니면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은 개성있는 역을 맡겠다는 뜻.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에서도 그는 그냥 시어머니가 아니었다. 독특한 캐릭터가 있었다는 것.
얼마전 그는 미국에 사는 한 팬의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을 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스무살쯤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예술가 역을 맡겨 보겠다’는 내용.
그러면서 그는 "평범한 사람도 김혜자 라는 배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왜 30년이나 몸담은 방송사(MBC)는 그렇게 안이하게 배우를 부려먹으려 하는 지 모르겠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자신을 할머니 취급하는 드라마를 거부하고 연극을 택했던 것이다.
김혜자에게는 좋은 배우로 남아야 하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배우 인생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해 준, 3년전 세상을 뜬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다.
또 하나는 계속 사랑받는 배우로 기억돼야 그가 전세계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들이 주목받지 않겠느냐는 것.
그는 천상 배우였다. 연기에 신이 들린.
김가희 기자 kahee@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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