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 전 영락교회 담임 김윤국 목사
한 사람의 자서전이 대학교 교재로 사용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가 살아온 삶이 상상이 된다.
북한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교사, 교회 전도사로 일하다가 월남해 한국군통역장교가 되고, 6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 미장로교(PCUSA) 목사로 미국교회를 담임하고 다시 50을 훨씬 넘긴 나이에 변호사가 돼 활동하다가 60을 넘어 한국으로 돌아가 영락교회를 담임하기까지…
80여 성상을 살아온 김윤국 목사의 삶을 짧은 글로 회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서전 글머리에서 밝혔듯이 일제치하를 거쳐 한국전쟁, 한인 미국 이민사를 꿰뚫는 김 목사의 삶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제 자서전 발간을 자청했습니다. 비용도 물론 다 댔고요. ‘산 넘고 물 건너’로 이름 붙인 이 책은 현재 워싱턴주립대 동아시아 연구소 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김 목사는 1922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다. 3대째 장로교인인 그에게 기독교 신앙은 삶의 중심이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로 있던 그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한 달간 투옥됐다가 풀려난 뒤 48년 남하했다.
균명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다시 통역장교가 된다. 종전 후 미국으로 유학 와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장로회 신학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가 소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이 두 개로 갈라지자 실망한 나머지 미국생활을 결심한다.
“63년부터 20년 넘게 미국교회 목사와 신학대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어를 잘 못하는 한인 이민자들이 당하는 고충을 보면서 이들을 실제적으로 도우려면 법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 목사는 한국서 은행장의 아내였던 한 여성이 호텔서 일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를 목격하면서 결심을 굳혔다.
“호텔 청소를 하던 이 여인이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 당일은 예의상 그냥 괜찮다고 호텔 주인에게 말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치료비를 청구했더니 괜찮다면서 무슨 소리냐고 치료비를 안주는 겁니다. 처음부터 미국 법을 잘 알고 명확히 일을 처리했더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요.”
78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57세의 나이로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김 목사는 본격적으로 한인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에 나섰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