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새벽 칼에 찔려 숨진 택시기사 김금식(59)씨는 지난 92년 4.29폭동으로 전재산이던 자동차정비소를 잃고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으로 살다가 한 많은 생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라스베가스에 정착한 여동생 박금순(56)씨의 초청으로 지난 83년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 시작한 김씨는 LA에서 주유소 점원 등 막일을 하며 정비자격증을 따고 푼푼이 돈을 모아 사우스 센트럴에 정비소를 시작했으나 4.29폭동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날렸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자금을 모아 3년전 토랜스에 차린 정비소 역시 적자 등 제반문제로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그 후 수년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리던 김씨는 약 1년반 전부터 택시기사 생활을 해오다 이런 변을 당했다. 5년전 갑자기 찾아온 중풍증세로 왼쪽 상반신이 마비됐던 김씨는 그동안 운전시에 오른팔만 사용해야 하는 신체적 어려움을 감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 라스베가스에서 김씨를 안부차 방문했다가 졸지에 형의 장례식을 치루게 된 동생 명식(48)씨는 "중풍증세로 팔 한쪽을 거의 쓰지 못해 힘들어하면서도 직업이라며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면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던 7일 밤에도 몇 십달러 더 벌겠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 이런 변을 당했다"고 비통해 했다.
김씨의 피살소식을 접하고 8일 밤에 LA에 도착한 여동생 박금순씨는 "결혼도 못해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이렇게 불쌍하게 죽었다"며 "차라리 총에 당했으면 고통이 없었을텐데...현장의 핏자국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오열했다.
김씨의 처남 박상태(61)씨는 "밤에 영업해야 돈이 조금 더 모인다며 약 3개월 전부터 야간운행을 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택시회사에서 일해온 한인기사 Y씨(53)는 "김씨가 얼마전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그만이라고 말하는등 외로움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며 "한때 그에게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유해 보기도 했으나 완강히 거절당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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