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한 여자들이 몰려온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한 여자들이 스크린을 장악하며 전국을 휩쓸고 있다. 관객들은 마치 신상품에 열광하듯 이들 여성 캐릭터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에 이어 내년 초 개봉 예정인 ‘피도 눈물도 없이’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이들 영화들은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하고 힘있는 여성 캐릭터를 개발, 상품화했다. 그리고 이들 신상품들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져 이미 대박을 터뜨렸거나 그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강한 여자에게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자 처음이야
소설 ‘엽기적인 그녀’ 시리즈가 PC 통신을 통해 퍼져 나갈 때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지하철에서 남자친구의 따귀를 때리며 놀고, 발이 아프다며 남자친구에게 구두를 바꿔신자고 하고, 심심하다며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을 입고 나이트에 놀러 가자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신선 그 자체였다. 그 흡인력은 영화로도 옮겨져 전국 487만 명(8일 현재)의 관객을 모았다.
’조폭 마누라’는 기획부터가 참신한 신상품이다. 조폭의 마누라가 아니라 마누라가 조폭인 설정. 무시무시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쓰며 싸움판을 전전하는 조폭의 2인자가 마누라다. 매일 아침 한 손으로 팔 굽혀 펴기를 하고,아기를 갖기 위해 남편을 완력으로 밀어붙이며 ‘강간’하는 마누라. ‘아내는 하늘, 남편은 땅’임을 보여주는 마누라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3주째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극장을 찾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새로운 ‘여성상품’ 중 가장 폭발력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라운드 걸 출신으로 현재는 투견장 보스의 애인인 한 여성(전도연 분), 금고털이범 출신으로 여성 택시운전사(이혜영 분)이 힘을 합쳐 투견장의 판돈을 싹쓸이하는 펄프 느와르. 매력이 물씬 풍기는두 여자가 대범한 일탈을 택해 세상과 남자를 향해 한판 멋진 승부를 건다.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TTL 소녀’ 임은경을 여전사로 변신시킨 작품. 신비롭고 청순한 이미지의 임은경에게 무거운 총을 쥐어주고 전투를 하게 만든다. 가상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액션물로 임은경은 게임 속 여전사가 돼 또 다른 신비를 선보인다.
여자도 남자도 모두 대리만족
남자를 압도하는 파워풀한 여성상은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에게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여자는 ‘나도 저렇게 파워풀해졌으면’ 하고 바라고, 남자는 ‘저런 여자를 만나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슬쩍해본다. ‘조폭 마누라’에서 신은경이 남편 박상면을 성폭행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낀다는 남자 관객의 말이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남녀 모두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하며 즐거워하는데 대박이 터지는 것은당연한 것이 아닐까.
좋은 노래도 여러 번 부르면 지겨워
최근 영화계 흐름에선 새 여성 캐릭터를 선보이는 것 만으로도 관심을 모았다.그러나 작품 수가 더해질수록 완성도와 이야기의 짜임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갈 것이다. ‘조악하고 유치하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관객 250만 명을 훌쩍 넘어선 ‘조폭 마누라’와 같은 사례가 두 번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얘기. ‘신선함’은 원래 유통 기한이 짧다. 파워풀한 여성의 보무도 당당한 스크린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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